“바람은 눈에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언제나 곁에 있다. 혼자서 살아낼 수 없는 어리고 약한 존재인 어린이에서 자기의 생을 개척해나갈 자세를 갖추는 청소년이라는 시간은 어른들이 모르는 어렵고 막막하고 험난하기도 한 여정이다. 그 여정에서 바람의아이들 책은 아이들이 자기가 바라는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데에 때로는 나침반처럼, 때로는 지도처럼, 때로는 땀을 식혀주는 바람처럼 다가가기를 원했다.”
바람의아이들은 어린이·청소년 문학 전문 출판사다. 아동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인 최윤정 대표가 2003년 세웠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던 때 “현재의 아이들”를 위한 책을 만들고 싶어 출판사를 차렸다는 그를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출판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에 따르면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아동 문학은 두 갈래 정도였다. 옛날 이야기나 현실이 아닌 것을 예쁘게 포장해 낸 ‘동심천사주의’와 일하는 아이들이나 가난 문제 등을 담아낸 ‘리얼리즘’ 계열의 책. 최 대표는 “외국 책들은 현재의 아이들을 이야기하는데, 한국은 구 시대의 얘기를 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신인을 발굴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아동문학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출판사를 차리고 당시 흐름에 맞지 않아 문학상 심사에서 떨어졌던 원고를 가져왔다. 첫 책 <64의 비밀>이다. 최 대표는 “인간이라는 종을 과학과 철학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비교적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추리 형식으로 쓰여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이라며 “어른들에게도 진지하고 어려운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을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이 신선하고 긍정적이었다”고 말했다. 학생과 선생님들 사이에서 인기 책이 됐고 지금도 판매가 이어진다.
지금까지 약 280종의 책을 냈다. 가장 화제가 됐던 책은 2004년 나온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다. 책은 청소년 문학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 대표는 “당시 청소년 소설은 40대쯤 된 작가들이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회고하면 쓴 것이 많았다. 당대의 청소년들이 보면 재미가 없을 얘기들인데, 이 책은 출판되고 ‘진짜 청소년이 썼냐?’는 얘기를 들었다”며 “부모들이 보기엔 발칙하지만, 아이들의 입김이 생생한 책이었다”고 말했다.
<64의 비밀>과 마찬가지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도 여전히 읽히는 책이다. 20년이 넘은 출판사라 절판된 책도 많을 것 같지만, 상당수 여전히 팔리고 있다는 것이 바람의아이들 책의 특징이다. 그는 “트렌드를 따르거나 편집 기획 방향을 우선으로 내세우기 보다 작가주의 정책을 고수한다”며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담은 책만 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오래가는 책이 많다”고 말했다.
출판사의 특이한 정책 중 하나는 “청탁 없이 투고로만 작품을 낸다”다. 외국 작품의 경우 최 대표가 좋은 작품을 골라 계약하지만, 국내 작품의 경우 인기 작가에게 원고 청탁을 해서 책을 내는 방식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인기 작가에게 청탁을 해도 무조건 좋은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인데, 오직 작품으로 승부한다는 뜻이다. 그는 “최근엔 출판사 경쟁이 심해져서 못하는 것도 있다”고 웃었다.
추천 책으로는 프랑스 청소년 소설<스파게티 신드롬>을 골랐다. 최 대표는 “청소년 시기 아이들은 참견 받고 싶지 않아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싶어 한다. 두 마음이 싸우니까 정확하게 말하기 어려워 힘든 시기다. 이 시기를 잘 담아주는 문학이 필요한데, 그런 책”이라며 “주목한 건 부모의 태도였다. 자신의 감정을 아이에게 분출하지 않고 뒤에서 지켜봐주는 태도가 훌륭하다 싶었다. 반면 한국은 부모들이 뒤에서 지켜보기 보다 앞에서 진두지휘한다. 경쟁 사회의 모습이 문학에도 담긴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과도한 입시 경쟁으로 4세 고시나 7세 고시라는 말이 유행하며 아이들이 책 읽기 어려운 사회가 되어가는 것에 아쉬워했다.
“문학이란 낮의 생활 속에서 잠시 밀쳐둔 수많은 느낌들을 조용히 불러내고 담아주는 밤의 언어로 지어진 집이다. 느린 리듬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가 너무 빠르게 변하다 보니 이 시대엔 그런 시간을 갖기 어려워 보인다. 어린이는 어린이의 시대를 마음껏 누려야 한다.”
▼바람의아이들이 출판한 책
한국은행이 24일 이재명 정부의 첫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두고 “취약부문 지원을 중심으로 신속하게 편성·집행됨으로써 경기 진작과 민생 회복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추경이 국채시장에 주는 부담도 제한적이라고 봤다. 내수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정부의 2차 추경안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한은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새 정부 추경을 평가해달라고 요청하자 “지난해 말 이후 통상환경 악화, 정치적 불확실성 등으로 경제심리 위축이 지속된 상황”이라며 이같이 답했다. 정부가 2차 추경안을 발표한 이후 한은에서 공식 입장을 낸 건 처음이다.
한은은 추경의 경제성장률 제고 효과와 관련해 “기획재정부 견해에 대체로 동의한다”고 했다. 임기근 기재부 2차관은 이번 추경으로 연간 경제성장률이 0.2%포인트 오를 수 있지만, 집행 시점이 하반기인 점을 고려하면 올해엔 0.1%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은 19조8000억원 규모의 국채 발행이 국채시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도 선을 그었다. 한은은 “국고채 금리가 추가 추경에 따른 영향을 이미 상당폭 선반영해 상승해왔고, 2차 추경에 따른 적자국채 발행 규모도 시장에서 예상했던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며 “향후 국고채 발행 물량이 다소 늘어나더라도 추가적인 금리 상승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추경으로 국가채무가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에도 한은은 “지출 구조조정, 외평채 조정, 여유 기금재원 활동 등을 통해 국채 발행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이 일부 병행됐다”면서 “취약부문 지원, 경제심리 개선 등을 통해 경기가 진작되면 재정 건전성 지표가 악화되는 영향이 일부 상쇄될 것”이라고 답했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 3조원 감액으로 추경 재원을 마련하면서 정부의 환율 대응 역량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기재부로부터 외국환평형기금의 사무 처리를 위탁받아 담당하고 있는 한은이 이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한은은 추경이 올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다만 내년에는 시차를 두고 0.1%포인트 정도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8일 “우리 경제 상황이 그리 좋지 않기 때문에 추경이 성장에 기여하는 측면이 크고 물가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진 의원은 “한은도 2차 추경 편성이 우리 경제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한 것”이라며 “여야가 추경안을 신속히 처리해 소비진작과 경기부양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박찬대·정청래 의원이 26일 이재명 대통령의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 현장에서 ‘악수 대결’을 벌였다. 친이재명계로 꼽히는 두 의원의 은근한 신경전은 이 대통령의 공평한 ‘3인 악수’로 마무리됐다.
정청래 의원은 이날 이 대통령이 국회 본관 현관으로 들어갈 때 현관 앞에서 기다리다 활짝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악수했다. 박찬대 의원은 이후 이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할 때 출입구에서 기다리다 의원들 중 가장 먼저 악수했다. 이 대통령이 박 의원과 악수하며 무언가 말하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이날 본회의가 끝나고 기자들과 만나 “(이 대통령과 악수할 때) ‘선거운동 열심히 하고 있느냐’고 물어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며 “대통령님이 (국회 본관 현관에) 들어올 때 정청래 의원과 악수했잖나. 그런데 저는 자리가 대통령이 지나가는 자리다. 그래서 그건 양보하고 여기(본회의장)에서 이렇게 악수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이 연설을 끝내고 본회의장을 빠져나갈 때는 박찬대·정청래 의원이 나란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박 의원, 정 의원과 차례로 각각 악수한 뒤 두 의원의 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쿡쿡 찔렀다. 두 의원이 급히 서로 악수하자 이 대통령은 악수한 손을 맞잡으며 ‘3인 악수’를 했다. 이 대통령은 두 의원의 어깨를 동시에 두들기며 격려하고 다른 의원들과 악수를 이어갔다.
박 의원은 ‘3인 악수’의 의미에 대해 “둘이 멋지게 경쟁하라는 의미 아니었을까 싶다”며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제가 안정적으로 와서 결국 정권교체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이 대통령과 함께 열심히 했고, 이번 전당대회도 멋있는 축제로 만들어 달라는 의미로 두 사람 손을 포개서 잡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 대통령이 얼마나 원칙주의자냐면 친소관계보다는 원칙을 중요시한다”며 “(이 대통령이) 정청래 후보가 오니까 아까 저랑 악수했던 것이 생각이 나서 ‘다시 오라’ 그래서 (박찬대·정청래 의원의) 손을 포개고 (자신의 손을) 얹어주셨다”라고 말했다.
정 의원도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이 대통령과의 악수 순간을 담은 글을 올렸다. 정 의원은 이 대통령이 자신에게 웃으며 “선거운동 잘 되고 있어요? 나는 한 표 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정 의원은 ‘3인 악수’의 의미에 대해 “갈라치기 하지 말고 분열하지 말고 축제 같은 전당대회를 하라는 주문으로 읽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