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주차대행 모래알을 검은 도화지에 흩뿌려놓은 듯, 밤하늘에 수백개의 별이 떠 있다. 사진 상단의 금성은 맞은편 차선에서 접근하는 자동차의 전조등을 연상케 할 만큼 밝다. 2021년 독일 한 지역에서 찍은 밤하늘 모습이다. 상공에서 지상으로 꽂히는 약한 빛을 망원경으로 장시간 흡수해 촬영했다. 밤에 천체 사진을 찍는 일반적인 기법이다.
그런데 이 사진, 한눈에 보기에도 이상하다. 얇은 직선이 사진을 가득 채웠다. 직선의 정체는 별이 아니라 인공 물체다. 미국 우주기업 스페이스X가 쏘아 올린 ‘스타링크’ 용도 인공위성의 궤적이다. 스타링크는 고객이 전 세계 어디에 있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하는 서비스로 2019년 시작됐다. 고도 550㎞에 떠 있는 위성 7000여기가 우주에서 기지국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작동한다.
혁신적인 통신 체계지만 스타링크를 구현하기 위한 수많은 위성이 지구 궤도에서 햇빛을 양껏 반사하며 궤적을 만들다보니 문제가 생긴다. 천체 망원경이 포착한 사진에 직선 형태 자국, 즉 일종의 낙서를 그리는 것이다. 이런 일은 지난 수년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천문학계에서는 매우 큰 골칫거리다.
그런데 돌파구가 생겼다. 지구 천체 망원경을 구할 비책이 내년에 본격적으로 가동된다. 비책의 정체는 ‘특수 페인트’다. 무슨 말일까.
이달 중순 영국 서리대 연구진은 공식자료를 통해 특수 페인트를 동체에 칠한 신발 상자 크기의 초소형 인공위성을 내년에 지구 저궤도, 즉 고도 수백㎞ 우주로 시험 발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이 붙인 페인트 이름은 ‘반타블랙 310’이다. 지구 주변을 도는 위성은 필연적으로 태양이 방출하는 빛을 반사한다. 위성에 닿은 빛을 최대한 빨아들여 반사를 줄이는 것이 반타블랙 310 목적이다. 내년 시험 발사도 지구 저궤도에서 반타블랙 310의 빛 흡수 능력을 알아보는 데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
지상 실험실에서 파악된 반타블랙 310의 빛 흡수율은 98%에 이른다. 현존하는 다른 검은색 페인트들은 95%를 넘지 않는다. 반타블랙 310을 칠한 부위는 말 그대로 칠흑 같이 어둡다. 검은 구멍이 허공에 뚫린 것 같은 착시마저 생긴다. 반타블랙 310은 무언가가 탈 때 생기는 그을음 성분인 ‘카본 블랙’에 특수 화학 물질을 섞어 만든다.
위성에 검은 페인트를 칠한다는 특이한 발상까지 나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위성으로 인한 빛공해에 시달리는 현재 천문학계 상황이 절박해서다. 국제천문연맹(IAU) 등에서는 스타링크 구축이 시작된 직후인 2020년부터 “지상 망원경 성능이 크게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스타링크 용도 위성이 우주에서 햇빛을 반사해 천체 망원경이 찍은 사진에 직선형 자국을 남기는 일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뒤에도 이런 일은 세계 천체 망원경에서 꾸준히 나타났다.
천문학계의 고충이 사라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스타링크 용도 위성 숫자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2019년 이전까지 지구 저궤도에는 위성이 총 2000여기 있었지만, 현재는 4배인 8000여기에 이른다. 이 가운데 약 90%인 7000여기가 스페이스X가 쏜 스타링크용 위성이다. 사막이든 대양이든 전장이든 가리지 않고 인터넷 연결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링크의 시장 가치를 높게 본 스페이스X가 지난 6년간 쉬지 않고 위성을 쏜 결과다.
스페이스X는 스타링크용 위성을 앞으로 수만기 이상 더 쏠 예정이다. 여기에 스타링크 유형의 인터넷 연결 서비스를 구현하려는 또 다른 기업들까지 가세해 자신들의 위성을 별도로 발사할 계획이다. 이 때문에 과학계는 2030년 지구 저궤도에 무려 6만기의 위성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한다. 천문학계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반타블랙 310을 칠한 위성의 시험 발사 성공 여부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으로서는 위성으로 인한 빛 반사 문제를 줄일 가장 현실적이며 유일한 대책이다.
만약 반타블랙 310으로 향후 지구 저궤도를 도는 위성들을 까맣게 칠하지 못한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칠레에 건설돼 올해 하반기부터 정식 운영될 최신 우주관측 시설 ‘베라 루빈 천문대’를 통해 예측할 수 있다.
베라 루빈 천문대는 미국이 6억8000만달러(약 9300억원)를 투입해 칠레에 건설했다. 가장 큰 특징은 폭이 1.65m에 이르는 세계 최대 천체 관측용 디지털 카메라가 장착됐다는 점이다. 3200만 화소로 밤하늘을 선명하게 촬영한다. 초신성 폭발이나 소행성 움직임 등을 정밀 관찰할 수 있다
우주과학계에서는 위성이 빛 반사 감소 대책 없이 계속 늘어나면 향후 10년간 베라 루빈 천문대가 찍을 사진 40%에서 직선이 발견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베라 루빈 천문대를 하루 운영하는 데에는 8만1000달러(약 1억1000만원)가 든다. 직선이 섞인 ‘불량 사진’이 늘어날수록 돈이 낭비되는 셈이다. 성능 좋은 천문대가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면 인류 우주과학 발전이 지연되는 문제까지 생긴다.
연구진은 “반타블랙 310은 초저온과 같은 혹독한 우주 환경에서도 검은색을 유지할 수 있는 내구성을 갖췄다”며 “밤하늘을 지속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12·3 불법계엄이 대규모 유혈사태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현장 군인들의 절제와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경향신문과 만난 곽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3일 밤 10시30분까지는 부대원들에게 계엄의 ‘ㄱ’자도 입도 뻥긋 안 했다”고 말했다. 계엄 선포 이틀 전부터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주변에 이를 전혀 알리지 않았고, 이에 특전사 부대원 누구도 계엄을 사전에 알지 못했기 때문에 부하들은 책임이 없다는 취지다.
곽 전 사령관은 불법계엄 당일 국회에 ‘최정예 부대’가 투입됐는데도 민간인 피해가 없었던 건 군인들이 자제력을 발휘한 덕분이라고 했다. 계엄군의 국회 출입을 저지하려는 시민들과 우발적인 충돌이 벌어지면서 부상을 입은 부대원들이 꽤 있었지만 “군인들이 (스스로를) 통제했고 잘 참았기 때문에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 당시 시민 중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자신이 ‘질서 유지를 위한 경고성 계엄’을 의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곽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이 주장이 자신이 ‘양심선언’에 나서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그는 “(유혈사태를 피한 것은) 군인들의 행동이 만든 결과인데, 그 공로를 대통령과 김용현이 가로채려 한다고 느꼈다”며 “그 얘기(경고성 계엄)를 들은 순간 ‘군인들이 잘한 것도 당신들이 지침을 줘서 된 걸로 포장하기 시작하는구나’ 싶었다”고 밝혔다.
앞서 곽 전 사령관은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 전 윤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사실을 최초로 폭로했다. 그는 계엄 때 국회에 병력을 투입한 데 가담해 내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으나 지난 4월4일 법원의 보석 석방 결정으로 풀려난 뒤 군사법원 재판을 계속 받고 있다. 법원은 곽 전 사령관이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하고 증거인멸 우려가 낮다고 보고 보석을 허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곽 전 사령관은 계엄에 연루된 다른 군인들과 달리 법정에서도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뒤 선처를 구하고 있다. 그는 “두 사람(윤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조금이라도 군을 보호하려는 생각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부딪히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누가 뭐라 해도 한번 갈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말했다. 이런 곽 전 사령관의 결심은 윤 전 대통령 파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윤 전)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했으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 같아요.”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던 날을 떠올리며 곽 전 사령관은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