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학교폭력변호사 대청댐 건설로 수몰된 옛 마을을 재현한 충북 청주의 ‘문의문화유산단지’가 새 단장을 마쳤다.
청주시는 문의문화유산지의 관람 편의를 높이고 관광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추진한 시설 개·보수 사업을 완료했다고 25일 밝혔다.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문산리에 위치한 문의문화유산단지는 1980년 대청댐 준공 당시 수몰 위기에 처한 지역의 문화재 등을 옮겨와 옛 마을을 재현한 곳으로 1997년 조성됐다. 1만 9091㎡ 규모의 단지 내에는 조선 중기 관아 건축 양식인 문산관(충북도 유형문화재 94호)을 비롯해 양반가, 대장간, 주막 등 20여 동의 전통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일부 시설의 노후화로 정비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시는 총사업비 2억 원을 투입해 지난 2월부터 새 단장에 나섰다. 주차장에 스토퍼를 설치하고, 보행로 130m 구간과 계단을 정비했다. 낡은 안내판도 교체했다.
시는 또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대청호미술관으로 향하는 길목에 60㎡ 규모의 공중화장실을 신축할 예정이다. 현재 설계가 진행 중이며, 내년 중 공사에 들어가 2027년 중순 개방이 목표다. 사업비는 총 6억 8000만 원이 투입된다.
시 관계자는 “문의문화유산단지는 대청호와 전통 한옥이 어우러진 청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 관광 거점”이라며 “방문객들이 더 안전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시설 관리 및 운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밤중, 발굴보고서 하나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탄식했다. ‘아, 이거 보존해야 했는데!’ 10여년 전 읽었을 때에는 미처 몰랐던 중요한 지점들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그 보고서는 1990년대 후반, 아파트 건설을 앞두고 구제 발굴을 한 모 지방 사직단에 대한 기록이었다.
지방의 사직단은 원형이 남아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단은 거의 다 사라졌고, 위치도 잊힌 곳이 많다. 그나마 ‘사직구장’과 같이 지명으로라도 남았으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그 의미도, 장소도 잊혔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분명한 문헌 기록도 별로 없다는 것이다. 사직단은 단의 크기와 높이가 굉장히 중요해서, <국조오례의>와 같은 예서에 변경해서는 안 되는 원칙으로 그 제도가 기재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지방마다 설치한 사직단의 크기는 <국조오례의>에 실려 있지 않다. 위치와 구성에 대한 소략한 내용만 있을 뿐, 단의 크기와 높이를 어떻게 한다는 내용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조선에서 지방의 사직단들을 통일 규격으로 설치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차라리 그 규정을 넣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 이 때문에 지방의 사직단들은 크기도, 높이도 제각각일 뿐만 아니라, 누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크기의 사직단을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 지방 사직단은 그렇지 않았다. 일단 위치가 정확히 확인되었고, 사직단의 담장까지 전체 영역이 온전히 나왔다. 더구나 그 사직단을 중수한 관료의 문헌 기록이 남아 있었고, 발굴된 유구는 그 기록과 일치했다. 심지어 그 관료는 조선시대를 조금만 공부하면 다 알 법한 유명 인물이었다. 내가 알기로 이렇게 삼박자가 다 갖춰진 지방 사직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바로 이 점을 이번에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뒤늦게 이 사직단의 가치를 깨닫고 나니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이곳을 밀고 아파트를 짓던 1990년대 후반에는 햇병아리 학생에 불과했기에 이런 문제 자체를 몰랐고, 10여년 전에는 논문 한 편 쓸 정도는 됐지만, 이런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만큼 공부가 깊지 못했다. 이제서야 드디어 그 의미를 깨우쳤으나, 단이 없어진 지 이미 3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작 유적 하나 가지고 뭘 그래? 30년 가까이 지난 일이고 이런 식으로 망가진 유적이 한두 가지도 아닌데?”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나 같은 연구자만이 아니라, 지역에서도 이런 유적을 자신들의 역사 자원으로 주목하기 시작했다. 제자리는 아니지만 인근에 작게 조성한 새 사직단에서는 몇년 전부터 사직제를 재현하고 있고, 문화유산 지정 가능성을 타진하자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얼마나 안타까운가. 원래의 유구를 그대로 남겨 두었다면 다른 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진정성을 확보했을 텐데. 거기에 그 단을 수리한 조선 관료의 이야기를 더한다면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제자리도 아닌 곳에 애매하게 새로 만든 단과 30년이 되어가는 아파트만이 남았다.
과거가 남긴 흔적은 현재의 공공이 함께 향유하고 미래 세대가 사용할 소중한 자산이다. 이는 정지된 유적이 아니라 새로운 서사와 의미가 끊임없이 솟아나는, 살아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를 함부로 파괴하거나 누군가 사유화해버리면, 그 가능성의 샘은 메말라버릴 것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서울 익선동의 복작대는 골목길을 볼 때면, 파괴된 피맛길이 누렸을 미래가 상상되어 입맛이 쓰다. “말 탄 관리를 피하던 골목!”이라고 신나서 소개할 유튜버의 모습, 파전에 막걸리를 기울이며 노포 감성을 즐길 젊은이들의 웃음소리. 대체 누가 이런 소중한 미래를 우리에게서 약탈하려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