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러시아 동결 자산 활용을 위한 논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구상 논의 과정에서 미국이 러 동결 자산 활용 수익에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드러나자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로이터 통신은 26일(현지시간) “EU 관계자들이 동결 러사아 자산을 활용한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과 관련해 미국이 다른 구상을 제시한 이후 (EU 내) 합의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U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역내에 동결된 러시아 자산 일부를 활용해 우크라이나에 향후 2년 간 1400억 유로(약 233조원)를 무이자 대출하는 이른바 ‘배상금 대출’ 방안을 추진해 왔으나 회원국인 벨기에의 반대로 그간 진척을 보지 못했다.
벨기에는 향후 법적 책임을 자신들이 떠안을 수 있고 러시아의 보복 우려도 있다는 것을 반대 논거로 들고 있다. 동결 자산은 대부분 벨기에 브뤼셀 소재 중앙예탁기관 유로클리어에 묶여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유럽의 납세자만이 비용을 떠안는 시나리오는 생각할 수 없다”며 EU 회원국인 벨기에를 설득하는 ‘법적 문건’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EU 내에선 최근 압류를 통해 러 동결 자산 소유권을 EU로 이전하자는 제안도 나왔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EU의 이같은 움직임은 러시아 동결 자산 활용과 관련한 미국 정부의 ‘동상이몽’이 최근 드러난 가운데 나왔다. 지난주 공개된 28개항 우크라이나 종전안에는 동결 러시아 자산 중 1000억 달러를 우크라이나 재건·투자사업에 투자하고 수익 50%를 미국이 가져간다는 구상이 담겼다. 해당 안에 따르면 러 자산과 별도로 EU도 이 사업에 1000억 달러를 투자해야 한다.
EU는 동결 자산 통제권을 미국이 갖고 수익까지 챙겨가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유럽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반발 요인이다. 독일과 프랑스 정부, EU 지도부가 강하게 반대하면서 해당 기금 조성 계획은 새 종전안에서는 일단 삭제된 상태라고 AP는 전했다.
유럽외교협의회(ECFR)의 아가트 드마레 선임연구원은 “이 계획은 미국 기업, 미국 정부, 러시아라는 세 주체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도이치벨레(DW)에 비판했다.
다만 유럽 측 방안에도 불안 요소는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로클리어는 우르줄라 위원장과 안토니우 코스타 EU 이사회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유럽의 소위 배상금 대출 방안이 외부에는 ‘몰수’로 비칠 수 있어 유럽 금융시장 매력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당장 유럽 지출 대신 러 측 자산을 활용하려다가 장기적으로 유럽 각국에 재정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진단이다.
EU는 다음달 중순 브뤼셀에서 정상회의를 열고 관련 논의에 나설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