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동 코오롱하늘채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애초 미·러시아가 마련한 러·우크라이나 평화협정 초안을 대폭 수정해 19개 조항의 새 평화협정안을 작성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평화협정 타결을 낙관하고 있으나 협정안에 우크라이나의 이해관계를 반영할수록 러시아가 반대할 공산이 커 실제 합의까지 넘어야 할 난관이 남아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국과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전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회담에서 평화협정 초안을 두고 논의한 끝에 기존 28개 조항을 19개 조항으로 수정했다. 회담에 참석한 세르히 키슬리차 우크라이나 외교부 제1차관은 “양측 모두 긍정적으로 볼 만한, 완전히 수정된 협정안이 나왔다”며 “기존 초안에서 남은 부분이 거의 없다”고 FT에 말했다.
조율된 이번 협정안에는 우크라이나와 유럽연합(EU)이 강조해온 레드라인이 일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WSJ에 따르면 초안에서 60만명으로 설정한 우크라이나군 규모 상한선은 EU 제안대로 80만명으로 늘리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추가 확장 제한 조항에 관해서도 표현을 완화하는 방안 등이 논의됐다. 다만 최종안 합의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러시아에 넘기는 문제, 나토와의 관계 등 가장 첨예한 쟁점들은 정상들 간에 담판을 지어야 할 안건으로 미뤄뒀다. 키슬리치 차관은 이런 쟁점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결정하도록 “괄호로 묶어뒀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수정된 협정안에 대해 “정말 올바른 접근방식”이라며 “민감한 사안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정부도 이번에 조율한 협정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양측(미국과 우크라이나) 팀이 해결하려는 이견은 단지 몇 개에 불과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가 도출될 수 있다는 희망과 낙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만남은 아직 예정돼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정부의 바람과 달리 러시아는 수정된 종전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WSJ은 “미국의 계획이 우크라이나의 우려를 누그러뜨리려 할수록 러시아가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작아진다는 점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고 짚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2일 평화협정 초안을 ‘합의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 만큼, 우크라이나의 입장이 반영된 이번 협정안을 두고는 협상이 다시 공전할 수 있다.
전날 우크라이나와의 회담에 미국 대표단으로 참석했던 댄 드리스컬 육군장관은 이날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에서 러시아 대표단과 만나 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구상 협상에 착수했다. 드리스컬 장군은 이날 미국과 우크라이나 측이 수정한 평화협정안을 러시아에 전달할 계획이라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러시아는 종전을 위한 평화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등을 향한 무인기(드론) 공습을 이어갔다. 이날 밤부터 이어진 러시아의 드론·미사일 공격으로 키이우에서 최소 2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고 CNN 등은 전했다.
대구 성서공단의 한 공장에서 베트남 국적의 청년이 추락해 숨졌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색출하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사무소 단속을 피하려다 벌어진 참사다. 희생된 뚜안은 ‘불법체류자’가 아니었다. 25세의 여성, 한국 대학을 막 졸업하고 구직 체류자격을 받아 취업을 준비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는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지 2주 만에 사망했다.
법무부는 “적법절차를 준수하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를 취한 후 단속을 마쳤다”고 주장한다. 지난 10월29일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오후 4시 단속을 종료하고 오후 6시 이전 철수했으며, 사망 시각은 오후 6시30분 이후”라고 적시돼 있다. 그러나 뚜안의 SNS 기록을 살펴보면 오후 6시26분에도 출입국(단속반원)이 명단을 가지고 있고, 아직 못 찾은 사람을 찾고 있는 상황이었음이 드러난다.
법무부가 ‘적법절차 준수’ ‘안전사고 예방 조치’를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간 출입국 단속 과정에서 무리한 공무집행으로 인한 사망·부상 사건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공장 관리자의 동의나 승낙 없이 사업장에 진입한 사례, 이미 다른 동료들에 의해 제압당한 외국인을 수차례 발로 밟고 차는 사례 등은 법원에서 ‘위법한 공무집행’으로 확인되었다. 정부는 미등록 체류자가 ‘서민 일자리를 잠식하고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며 강력한 단속의 정당성을 주장해왔다. 2023년부터는 ‘불법체류 감축 5개년 계획’을 내세우며 단속 인력을 88명 증원하고 관련 예산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목표는 미등록 체류자를 43만명대에서 30만명대로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단속은 실제 효과가 있는가.
뚜안의 사례는 정부의 논리가 취약함을 드러낸다. 대구 성서공단에서 파견업체를 통해 공장에서 일한 그는, 미등록 체류자도 아니었지만, 내국인이 기피하는 생산직 일자리에 자원해 일한 것일 뿐 내국인과의 취업 경쟁에서 승리하여 일자리를 빼앗은 게 아니다. 오히려 취약한 지위를 악용당해 범죄 피해자가 되는 일이 많다. 단속의 우려로 경찰 등 범죄 피해를 구제해 줄 공권력에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단속은 목표한 효과도 내지 못하고 있다. 강도 높은 단속 정책에도 미등록 체류자 수는 크게 줄지 않았다. 팬데믹 이후 출입국 증가 등을 고려하면 단속이 얼마나 목표 달성에 기여했는지 측정조차 어렵다. 정부는 많은 돈을 들여 단속하고 그 과정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지만, 그로 인해 달성되는 공익적 효과도 확실치 않으며 단속의 목표 달성 여부조차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단속은 계속된다. 뚜안의 사망 직후에도 경남 고성에서 단속 중 3명의 중상해·상해 사고가 잇따랐다. 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공장 가동을 멈추고 원인을 조사한다. 그러나 정부의 단속은 인명 피해가 발생해도 절차와 방식에 대한 재점검 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는 사냥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때다. 노동자가 아닌 고용주 제재 방식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미등록 체류자의 안전한 관리와 지원을 바탕으로 한 접근, 스스로 출국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의 보장 등을 통해 인권을 침해하지 않고도 효율적인 방식을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