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마케팅 사모펀드 론스타와 한국정부의 분쟁에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가 한국정부의 손을 들어줬지만 다툼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ICSID 협약에 ‘중재판정 취소 후에도 중재신청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사실상’ 최종승소했다고 보면서도 론스타의 2차 중재신청 제기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ICSID 협약 52조6항은 “판정이 취소된 경우 당사자 일방의 요청이 있으면, 그 분쟁은 새로운 중재재판부에 회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중재판정에 불복해 취소 신청을 내고 이후 무효로 판결이 나오더라도 당사자가 요청하면 새로운 중재판정부가 구성돼 사건을 다시 심리할 수 있다는 의미다. 처음 중재신청을 할 때는 ‘투자협정에 명시된 기간 내에 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었는데 2차 중재신청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현시점에서 정부의 배상책임이 법적으로 완전히 종료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ISDS 중재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취소 절차에서는 중재판정부의 실체적 판단을 다시 검토하지 않는다. ICSID 협약에서 정한 절차적·구조적 하자만 심사할 뿐이다. ICSID 취소위원회가 판정을 무효로 돌렸다고 해서 사건의 사실관계 등을 다시 판단한 것은 아니다. 무효로 판정이 나오더라도 당사자 요청이 있다면 새 중재판정부가 구성돼 본안을 재판단하는 절차가 개시될 수 있다.
법무부는 론스타의 2차 중재신청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번 중재신청을 제기할 때 드는 비용이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만큼 론스타가 이를 감수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보면서도 이번 결과가 절차적 문제로 뒤집힌 것이어서 소송 제기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실제 론스타 측은 2차 중재신청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9일 “론스타 대변인이 ‘론스타는 새로운 중재판정부 앞에서 다시 사건을 제시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법무부는 2023년 9월 ICSID에 판정부의 명백한 권한 유월(월권), 절차규칙의 심각한 위반, 이유 불기재 등을 이유로 판정 취소신청을 제기했다. 론스타 측은 같은 해 7월 판단 오류 등을 이류로 판정 취소 신청을 냈다. 앞서 ICSID 중재판정부가 한국 정부에 ‘론스타에게 2억1601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정한 데 따른 불복 소송이었다. 양측의 쌍방 불복 소송 2년여 만인 지난 18일 ICSID 취소위원회는 한국 정부 손을 들어줬다.
인공지능(AI) 패권을 둘러싼 경쟁이 날로 격화하는 가운데 세계 곳곳의 관련 규제가 잇따라 뒷걸음질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19일(현지시간) 세계 최초의 포괄적 AI 규제인 ‘AI 법’의 핵심 조항 적용을 연기하고,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완화하는 내용의 방안을 발표했다. EU의 AI 법은 AI 위험도를 크게 4단계로 나눠 차등 규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3월 유럽의회를 통과했으며 내년 전면 시행될 예정이었다.
이날 공개된 방안에는 기업이 건강과 안전, 기본권을 위협할 수 있는 ‘고위험’ AI를 사용할 때 EU의 엄격한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 시기를 당초 내년 8월에서 2027년 12월로 연기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기업이 AI 모델 학습에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더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손질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법안의 전면 시행을 앞두고 EU가 규제 완화에 나선 데에는 날로 치열해지는 AI 패권 경쟁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열을 올리는 가운데 일부 회원국과 기업들은 EU 규제로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불만을 제기해왔다.
EU는 이번 조치로 유럽이 AI 경쟁에서 미·중을 따라잡고 역외 기술 기업에 대한 의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발디스 돔브로프스키스 EU 경제 담당 집행위원은 “유럽은 지금까지 디지털 혁명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으며, 변화하는 세계를 따라잡지 못해 대가를 치를 여유가 없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EU의 디지털 규제를 두고 자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차별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여온 것 역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이번 후퇴가 유럽의 자발적 판단이 아닌 미국의 압박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한다.
AI 규제의 이정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던 유럽마저 한발 물러서면서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반발도 나온다. 국제 비영리단체 유럽디지털권리기구(EDRi)는 “EU 디지털 보호 장치를 대규모로 후퇴시키는 조치”라며 “EU의 인권 및 기술 정책의 근간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AI 관련 규제 완화 움직임은 유럽 외 세계 곳곳에서 일고 있다. AI 3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한국 정부 역시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AI 기본법의 과태료 부과 적용을 1년간 유예하는 등 규제보다 진흥에 무게를 싣고 있다. 일본도 AI 학습을 위해 저작권 규제를 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