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망머니상 세계중년회의
“일본 현대시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아온 작가의 대표작을 모은 시선집. 표제작 ‘세계중년회의’는 중년이라는 생의 한 국면을 통해 동시대의 초상을 그려냈다. ‘그彼’ 등에서는 일본의 현재를 응시한다. 요쓰모토 야스히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문학과지성사. 1만4000원
리듬 난바다
한적한 바닷가 마을의 30대 농부 을주와 마을에 정착한 비밀스러운 외지인 둘희, 그리고 둘희가 사랑하는 영화감독 기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소설. 2024년 7월부터 12월까지 약 6개월간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된 글을 개고해 냈다. 김멜라 지음. 문학동네. 2만1000원
바닥을 때리고
부모님을 속이고 마트에서 일하는 장기 취준생 예리와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싱글맘 진희가 구민 체육센터의 농구 수업에서 만나 풀어가는 이야기. 각자의 이유로 농구를 찾아온 이들은 서로 가까워지며 삶을 대하는 자신만의 태도를 찾아간다. 권혁일 지음. 나무옆의자. 1만6800원
전방 100미터에 캥거루족이 등장했습니다
33년째 부모님과 함께 거주한 캥거루족인 저자의 에세이. ‘미’독립이 아닌 ‘비’독립을 택한 캥거루족의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캥거루족을 바라보는 인식을 다양화하고 좀 더 건강한 캥거루족이 되기 위한 자세를 생각하게 한다. 경기히든작가 프로젝트 당선작. 나목 지음. 싱긋. 1만5000원
디 에센셜 : 제인 오스틴
세계적인 작가의 대표 소설과 에세이를 한 권에 담은 디 에센셜 시리즈 열 번째 책. 대표작 ‘오만과 편견’을 포함해 팜 파탈 주인공이 등장하는 단편 ‘레이디 수전’과 1790~1817년 사이 작가가 쓴 편지들이 실렸다. 제인 오스틴 지음. 전승희 옮김. 교보문고·민음사. 2만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부산시장 시절의 역량을 인정받아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서울시장을 지낸 김현옥은 근현대 서울의 설계자로 꼽힌다.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와 외곽순환도로, 남산 1·2호 터널 같은 도로뿐 아니라 여의도와 한강 개발, 청계고가와 3·1빌딩, 세운상가가 모두 그의 임기 중 추진된 것이기 때문이다.
엄청난 규모와 속도로 밀어붙이는 개발 방식은 그에게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을 가져다주었고 그는 “도시는 선(線)이다”라는 지론을 피력했다. 한국전쟁의 폐허와 낡고 추한 것들을 일소하고 만드는 곧고 단정한 건물과 가로가 그가 지향하는 바였다. 급하게 지어진 와우아파트가 1970년 붕괴하면서 책임을 지고 사임하긴 했지만 지금의 서울시에 그의 자취는 뚜렷하다.
미국 뉴욕시의 도시계획가 로버트 모시스는 김현옥과 많이 닮은 사람이었다. 그는 오스망 남작이 개조한 파리처럼 뉴욕을 재설계하고 싶어 했다. 그는 맨해튼 고속도로가 시민들이 사랑하는 그리니치 빌리지와 소호 지역을 통과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하지만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반대의 선봉에 선 인물은 시민 도시운동가 제인 제이콥스였다. 그녀는 최악의 슬럼으로 간주되던 보스턴 노스 엔드 지역이 실은 다양한 건물과 인구가 혼합된 활력 넘치고 건강한 동네라는 것을 발견했고, 도시계획은 복잡하고 유기적인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러 규모와 가격대, 용도를 지닌 건물과 길은 사람들의 만남과 교류를 촉진한다. 서울에서 성수동, 을지로, 홍대 등은 관광객이 모여들고 활력이 넘치는, 제이콥스의 생각과 닮은 곳이다. 싹 다 갈아엎고 번듯한 건물 블록이 들어선 재개발 지역이 아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후문 부근에 있던 사라진 피맛골과 그 자리에 들어선 주상복합단지는 그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세운4구역 개발사업이 많은 논쟁을 낳고 있다. 그런데 오 시장에게 도시는 여전히 ‘선’인 것 같다. 직선뿐 아니라 인위적이고 일률적인 곡선도 선에 해당한다. 낡은 것은 모두 악이고 계획가의 질서만이 진리라는 ‘선의 철학’이다. 오 시장의 그런 철학이 구 서울시청 건물을 허물고, 서울운동장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바꾸고, 한강을 다듬어 수상버스를 띄우게 했을 것이다. 도시는 선이라는 철학을 공유하는 지금의 시장이 과거의 시장이 만든 세운상가라는 선을 철거하고 녹지축이라는 새로운 선으로 대체하려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세운상가를 존치해야 할지, 종묘의 경관을 어느 정도까지 보호해야 할지, 개발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지 모두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이 사업은 세운4구역뿐 아니라 그 뒤의 을지로와 충무로, 다른 도시의 여러 지역으로도 이어지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전부 아니면 전무, 개발 아니면 슬럼이라는 이분법은 생산적 논의를 가로막을 뿐 아니라 현장의 실제 상황과도 거리가 있다. 도심에서 선반공과 인쇄업을 다 몰아내는 게 능사는 아니며 거기엔 지주들의 이해관계도 있지만 거미줄 같은 산업과 삶의 생태계가 있다. 우리에겐 선보다 훨씬 많은 관계를 챙기는 그런 사려 깊은 도시계획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