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이혼 미성년자 성착취범인 고 제프리 엡스타인 문건의 강제 공개를 명령하는 법안이 미 하원에 이어 상원에서도 통과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엡스타인의 죽음 후 6년, 그의 성범죄 사실이 경찰에 처음 신고된 때로부터 무려 20년만이다.
엡스타인이 빌 클린턴 전 대통령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민주당과 공화당을 넘나들며 정·재계 인사들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형성한 탓에, 엡스타인 문건 공개 요구는 외로운 싸움일 수밖에 없었다. 그 외로운 싸움의 중심에 ‘생존자 자매들’이 있었다. 미성년자 시절 엡스타인으로부터 성착취를 당한 피해 여성들이다.
미 하원이 문건 공개 법안을 표결에 부친 18일(현지시간) 오전, 의회 의사당 앞에 한 무리의 여성들이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을 들고 결연한 표정으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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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이들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문제입니다.” 헤일리 롭슨은 엡스타인에게 성착취를 당했던 미성년 시절의 자신처럼 지금도 어디선가 같은 피해를 당하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 그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그는 하원의원들을 향해 “생존자와 아이들을 선택해달라”고 간청했다.
또 다른 생존자 웬디 에이비스도 “우리는 애초에 우릴 보호해준 적 없는 사람들(민주당과 공화당)의 싸움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며 “우리는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하는 것도 모자라 그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정치에서 살아남느라 지쳤다”고 말했다.
엡스타인 피해 생존자들이 이처럼 직접 한자리에 모여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버지니아 주프레의 죽음 이후부터였다고 USA투데이는 전했다. 이들은 지난 9월 의사당 앞에서 열린 생존자들의 첫 기자회견에서 “주프레는 생전 우리가 항상 함께 모이기를 원했다. 주프레가 없었다면 우리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프레는 엡스타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최초의 피해자다. 그는 자신을 보고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 시작한 많은 생존 여성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돕는데 헌신해왔지만, 지난 4월 회고록 출간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사후 출간된 회고록 맨 앞장에는 “성적 학대를 겪은 생존자 자매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쓰여 있었다.
미 전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생존자 자매들’은 그동안 서로를 의지하며 끔찍한 트라우마를 이겨내려 노력해왔다. 텍사스에 사는 호스피스 간호사 베나비데즈는 “엡스타인 생존자가 느끼는 고립감은 정말 크다. 다른 생존자 자매들 말고는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USA투데이에 말했다. 그는 시애틀에 거주하는 또 다른 생존자 마리케 차르투니와 한 달에 한 번 이상 통화를 하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줬다.
미 하원 표결을 지켜보기 위해 이날 다시 의회로 모인 생존자들은 물을 나눠 마시고, 서로의 손을 조용히 꽉 쥐면서 결과를 기다렸다. 엡스타인에게 성착취를 당할 때 16살이었다는 애니 파머는 “이렇게 함께 모일 때마다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에서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로 바뀌게 된다”며 “우리는 함께할 때 강해진다”고 CNN에 말했다.
하원에서 관련 법안이 427대 1의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은 여성들은 모두 환호하며 기뻐했다. 다니 벤스키는 “우린 한번도 승리해본 적이 없는데 드디어 승리했다”고 말했다.
법안 통과의 또 다른 주역 중 한 명인 낸시 메이스 공화당 하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 역시 성적 학대를 겪은 생존자이다. 그는 현재 전 약혼자를 성폭행·성매매 등의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메이스 의원은 엡스타인 문건을 공개하라는 강제 부의안에 서명한 공화당 의원 4명 중 한 명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끝내 서명을 철회하지 않았다.
메이스 의원은 엡스타인 생존자 여성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당신들은 언젠가 정의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고 말했다. 생존 여성들은 메이스 의원을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꼭 안아줬다고 CNN이 전했다.
▼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han.kr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미 남동부 노스캐롤라이나주 최대 도시 샬럿에서 대대적인 이민 단속을 벌여 이틀 동안 100여명을 체포했다. 단속 요원들이 피부색을 근거로 표적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한국계가 운영하는 식료품 상점도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 국경순찰대는 지난 15일 샬럿에서 ‘샬럿의 거미줄 작전’으로 명명된 불법체류자 단속 작전을 개시했다.
트리샤 매클로플린 국토안보부 차관보는 “국경순찰대 요원들이 이민법을 위반한 불법체류자 130명 이상을 체포했다”면서 체포된 사람들에게 갱단 가입, 폭행, 절도, 기타 범죄 등의 전과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았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민주당 소속인 조시 스타인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영상 성명에서 “우리는 복면을 쓰고 중무장한 요원들이 소속 기관 표시가 없는 차량을 몰면서 피부색을 기준으로 미국 시민을 표적 삼는 것을 목격했다”며 “이런 단속은 우리를 더 안전하게 만들지 않는다. 이것은 두려움을 조장하고 지역사회를 분열시킨다”고 반발했다.
단속 과정에서 한국계가 운영하는 식료품 상점도 피해를 봤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한국에서 건너온 이민자 가족이 운영하는 식료품 체인점 슈퍼G마트 파인빌 지점에 지난 15일 오후 2시쯤 국경순찰대가 들이닥쳐 마트 직원들을 매장 밖으로 끌어냈다. 20대 직원 한 명은 매장 밖으로 끌려나간 뒤 콘크리트 바닥에 얼굴이 짓이겨졌다. 직원들과 매장을 찾은 한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고 고등학생 계산원은 겁에 질린 채 화장실에 숨었다.
이 지점은 한국계 아이린 한이 사장, 두 아들인 피터 한과 폴 한이 각각 부사장과 운영관리자를 맡고 있다. 피터 한 부사장은 단속 다음날 지점 직원 80명 중 절반 이상이 불안감에 근무를 하지 못했다고 NYT에 말했다.
AP는 샬럿에 대해 1987~2009년 공화당 인사가 시장을 지냈으나 경기 호황으로 인해 인구가 증가하고 이민자 유입이 급증하면서 민주당 성향의 도시로 변모했다고 설명했다. 샬럿의 민주당 인사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지지자들의 시선을 불법 이민 문제와 이민에 포용적인 민주당으로 돌리기 위해 샬럿을 단속했다고 보고 있다. 릭 수 노스캐롤라이나대 법학교수는 “트럼프 정부는 단순히 사람들을 추방하는 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쇼’에 관심이 있다”고 AP에 말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샬럿의 경전철에서 한 남성이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 난민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범죄자 단속을 위해 이 도시에 군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