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좋아요 늘리기 초겨울 바람이 쌀쌀한 19일 오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로비에는 묘한 온기가 감돌았다. 국립무용단의 2002년생 신예 단원부터 1941년생 2대 단장까지 60여년의 시차를 가로질러 한국무용의 역사가 한데 만난 것이다. 국립무용단 단장을 역임한 4명의 안무가 조흥동(84·임기 1993~1994), 배정혜(81·2000~2002, 2006~2011), 김현자(78·2003~2005), 국수호(77·1996~1999)의 대표작을 선보이는 국립무용단 <거장의 숨결> 기자간담회에선 반세기 춤판을 걸어온 이들의 생생한 증언이 펼쳐졌다.
“저는 팔자소관으로 춤만 추다 보니 영광스럽게 이 자리까지 온 거 같습니다. 제가 춤을 9살 때부터 춰왔는데 춤의 길을 바람과 함께 걸어왔다는 뜻에서 ‘바람의 시간’이라는 제목을 붙여봤어요. 인격, 덕망, 학식 모든 것을 갖춘 ‘상남자’, 한량의 춤입니다.”(조흥동)
“‘Soul, 해바라기’는 2006년 초연작인데 당시 한국 전통 창작춤으로 세계화를 시도하는 일은 드물었어요. 세계 사람들이 가깝게 느끼도록 재즈 음악을 가지고 한국춤을 변형해보자는 생각을 했죠. 세 살 때 무용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부족한게 많은 것 같고, 죽을 때까지 연구해야죠.”(배정혜)
“저희들은 신무용의 세례를 받았는데 전통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해답을 찾기 위해 참 많은 실험을 하다보니 생을 마감할 시간이 됐네요. ‘매화를 바라보다’는 전통과 현대를 ‘어떻게’ 수용할 지 헤매다가 다시 거울 앞에 선 심정으로 만들었어요.”(김현자)
“1973년 국립극장이 세워지고 제가 남자 무용수 1호로 취직을 했는데 당시 화두는 한국춤을 어떻게 세계와 만나게 할까였습니다. ‘티벳의 하늘’은 1998년 초연작인데 당시 IMF 시기였잖아요. 국가적 위기로 국립극장도 어렵던 그 때에 동양적 윤회 사상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아보는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했었죠.”(국수호)
한 무대에 두 작품을 순차적으로 올리는 더블빌 형식으로 펼쳐진다. <거장의 숨결Ⅰ:배정혜, 국수호>(12월17~18일)은 전통춤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한국 무용사에 전환점을 이룬 두 작품을 올린다. 컨템포러리 한국춤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Soul, 해바라기’는 해외 전석 매진을 기록하고, 2016년까지 재공연되며 국립무용단 대표 레퍼토리로 자리잡았다. ‘티벳의 하늘’은 파격적인 구성, 철학적 사유가 담긴 몸의 움직임을 통해 한국무용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거장의 숨결Ⅱ: 김현자, 조흥동>(12월20~21일)은 한국무용의 여성성과 남성성이 대비되는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다. 2011년 초연된 ‘매화를 바라보다’는 수묵화 같은 담백한 무대에 가야금산조 선율이 더해져 무용수의 호흡과 움직임만으로 전통의 품격을 표현한다. 신작인 ‘바람의 시간’은 ‘군자의 길을 걷는 삶의 자세’를 절제된 동작과 깊은 호흡을 통해 남성춤으로 형상화한다.
이번 공연은 한국 무용의 근간을 되돌아보고, 미래의 방향성을 모색한다는 취지도 담았다. 최연소 단원으로 무대에 서는 이승연은 “이번 작업 자체가 국립무용단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역사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건한 미사 시간. 신부가 건네는 하얗고 동글납작한 무언가를 신자들이 받아 조심스럽게 먹는 장면은 비신자라도 한번쯤은 보았음직하다. 이 하얀 물체의 이름은 ‘제병’이다. 말 그대로 제사에 사용하는 떡(혹은 빵)이다. 밀가루에 물만 섞어 반죽한 뒤 납작하게 구워낸 소박한 이 밀떡은 미사에서 사제의 축성을 통해 ‘성체’, 즉 예수의 몸이 된다. 이 때문에 아무 재료로 아무렇게나 만들어 사용할 수 없다.
전국 최대 곡창지대인 전북 김제. 지난 13일 부량면에선 이색적인 예식이 거행됐다. 제병을 만드는데 사용될 전용 밀을 파종하고 이를 기념하며 축복하는 ‘밀밭 축복식’. 직접 농사를 짓는 한마음 영농조합 장수용 대표와 도정·제분 등 제병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전담하는 우리농촌살리기공동네트워크 심상준 대표 등 10여명의 관계자들이 모였다.
흰색 제의인 ‘카파’(cappa) 차림의 유정현 대건 안드레아 신부(전주교구 농촌사목 담당)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룰 밀알을 심는 귀한 시간”이라며 축복식을 집전했다. 인사와 전구(다른 사람을 위해 대신 청하는 기도), 축복 등의 순서에 이어 유 신부는 밀 씨앗이 뿌려진 잿빛 밭을 꼼꼼히 돌며 성수를 뿌렸다. 주님의 기도와 강복(성직자가 전례 안에서 축복하는 것)으로 축복식이 마무리됐고 곧바로 트랙터로 골을 정리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넓은 들판에서 20분 가량 이뤄진 축복식은 마치 초현실적인 영화의 한 장면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엄숙하고 진지한 식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농담을 던졌다. “농사가 잘 안되면 신부님 탓인거죠?”.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부량면 일대 3만평의 부지는 제병 전용 밀 재배단지다. 지난해 전용 단지가 조성된 뒤 올 6월 이곳에서 첫 수확을 했다. 파종된 밀의 품종은 과자를 굽는데 사용되는 박력분 ‘고소밀’이다. 이번에 심은 밀이 내년 6월 수확되면 도정과 제분을 거쳐 전국 7곳의 가르멜수도원에서 제병으로 만들어진다. 가르멜수도원은 외부와의 접촉이 엄격히 제한된 봉쇄관상수도원으로, 미사에 사용되는 제병을 전담생산해 전국의 성당에 공급한다.
한국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제병은 우리밀살리기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91년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발족한 뒤 천주교도 이 운동에 동참했다. 미사에 사용하는 제병을 우리밀로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고 고 김수환 추기경이 앞장서 힘을 보탰다.
하지만 당시 생산되던 우리밀 품종은 금강, 백강 등 주로 강력분이 많아 제병으로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점성이 강해 반죽이 제작판에 쉽게 달라붙어 제대로 된 모양을 만들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투입된 밀가루 대비 완성품의 비율이 20% 수준에 불과했다. 가공성이 뛰어난 수입밀을 사용하면 여러모로 편리하고 값도 쌌지만 우직한 고집은 이어졌다. 애초 천주교가 우리밀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것은 ‘수입밀 대신 우리밀을 사용하는 것은 탄소배출을 줄이고 환경을 보존해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지켜갈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2010년 농촌진흥청에서 고소밀을 개발하면서 상황은 호전됐다. 심상준 대표는 “그전엔 수녀님들이 제병을 만들면서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셨는데 고소밀을 제분해 가져다 드렸더니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제병을 만들 고소밀 전용 재배단지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지난해 전용 단지 조성이 본격화됐다. 3만평 규모에서 생산되는 밀의 양은 연간 50t정도. 연간 필요량은 200t 규모라 앞으로 전용단지 확장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미사에 사용하는 제병은 밀가루와 물 외에 다른 첨가물이 들어가면 안된다. 무미건조한 맛의 딱딱한 과자에 가깝다. 누룩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부풀려 폭신한 식감을 낼 수 없다. 누룩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 만찬이었다는 해석에 따른 것이다. 유월절은 유대교의 대표적 절기로, 이 시기에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는 것이 관습이었다. 반면 정교회는 최후의 만찬 식탁에 누룩이 들어간 빵이 올랐다고 해석하며 누룩이 들어간 빵을 성찬식에 사용한다. 개신교는 성찬에 사용하는 빵의 누룩 유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