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플리카쇼핑몰 1778년 음력 9월의 기록에 따르면, 선산 지역의 작황은 말이 아니었다. 봄에 빌린 환곡은 고사하고, 전세(田稅) 납부만으로도 겨울 나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절망은 수확에 대한 기대에 반비례하는 법이니, 민심은 흉흉해졌고 백성들은 겨울 초입부터 허리끈을 졸라매야 했다. 다행히 이 와중에 새로 부임하는 경상도 관찰사가 선산을 지나 성주로 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관찰사(觀察使)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관찰사가 새로 부임하면 그 지역 작황과 민심을 살피는 일은 너무 당연했다. 내년 보리 수확기까지 내리 굶어야 하는 백성들 입장에서는 관찰사의 눈이 자신들에게 머물기만 해도 겨울 목숨 하나 더 얻을 방도를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할 만한 상황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타운홀 미팅까지는 아니더라도, 백성을 살피는 눈만 있으면 선산부 처지는 충분히 눈에 들어올 정도였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 부임하는 경상도 관찰사 이재간은 이조참판과 호조참판을 지낸 노련한 관료였다. 인사와 재정 실무 책임자를 역임한 사람이었으니, 군현의 수령을 다스리는 일과 세금 정책만큼은 전문가 중의 전문가였다. 지역 사족과 백성들 입장에서 기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기대와 달랐다. 새로 부임하는 관찰사의 요구였는지 아니면 선산부 현실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선산 부사의 의도였는지 알 수 없지만, 이재간이 선산을 지나면서 들른 곳은 매학정과 채미정 단 두 곳이었다. 낙동강 언덕에 자리를 잡아 강의 경치를 내려다보기 좋은 매학정과 금오산의 빼어난 절경을 올려다보기 좋은 채미정에서 선산의 아름다움만 눈에 담았다. 절경에 빠질 수 없는 술과 기름진 음식은 관찰사의 눈을 돌리지 못하게 잡아두었을 터였다.
결국 관찰사가 지나가는 고을 사족과 백성들이라도 이 상황을 알려야 했다. 관찰사가 지나가는 고을 사람들 모두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린 이유였다. 약간이라도 큰 고을을 지날 때면 관찰사는 잠시 가마에서 내려 지역 사족들과 인사치레라도 하기 마련이니, 이때를 이용해 선산부의 처지를 알릴 수 있도록 생각과 말을 맞추어두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기대에 찬 기다림에도, 관찰사의 행렬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마을을 지나쳤다. 자신의 눈에 담은 아름다운 선산의 절경에 화답이라도 하듯, 화려한 부임 행렬만 백성들에게 보여준 채 관찰사는 얼굴 한 번 내밀지 않았다. 이를 본 선산 백성들은 부풀어 올랐던 헛된 기대를 가라앉혀야 했다. 이제 그해 겨울을 어떻게 살아서 넘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만 남았다(노상추, <노상추 일기>).
석 달이 지나 관찰사를 매학정과 채미정으로만 안내했던 선산 부사에 대한 인사 평가가 나왔다. 모든 군현 수령은 그 지역 관찰사가 조정에 올린 보고서를 바탕으로 평가를 받는데, 선산 부사는 “스스로 업무에 노련하고 숙달되었으니 진휼하는 일을 어찌 걱정하겠는가”라면서 최고 등급인 상(上)을 받았다. 백성들은 겨울을 나지 못한 채 굶주리고 있는데, 선산 부사는 조정에서 진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선산부의 좋은 경치만 눈에 담았던 경상도 관찰사는 백성들이 굶어 죽는 현실마저 아름답게 보였나 보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힘든 삶은 굳이 찾아서 다가서야만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의도적으로 백성들 삶의 현장을 피해 아름다운 곳만 찾거나, 길거리에 서 있는 백성들의 힘든 눈초리를 애써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인사와 재정 사무처럼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라, 잠시 가마에서 내려 그들이 준비한 말만 들어보면 알 수 있는 게 백성들의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삶은 늘 나아지지 않았고, 그 와중에 정치는 늘 자신들이 잘한 것만 말한다. 평범한 백성으로 사는 삶이 참으로 녹록지 않다.
영국 공영방송 BBC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큐멘터리 짜깁기 논란’과 관련해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경우 맞서 싸우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사미르 샤 BBC 회장은 17일(현지시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금 등을 요구하는 법적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샤 회장은 “우리는 우리 자금 조달의 특권적 성격과 수신료 납부자인 영국 국민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확실히 알고 있다”며 “우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근거는 전혀 없으며, 우리는 이 문제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했다. BBC는 영국 TV 시청 가구에 의무 부과되는 수신료로 운영되는 방송사다.
앞서 샤 회장은 논란이 된 영상 편집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편지를 보냈다. 다만 샤 회장은 BBC가 명예훼손 소송의 대상이 된다는 주장에는 반대 입장을 전했다. BBC에서는 이미 고위직 2명이 사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BBC가 미 대선 직전인 지난해 11월 방영한 다큐멘터리 <트럼프: 두번째 기회?>에서 자신의 연설 일부를 짜깁기해 2021년 1월 6일 발생한 ‘의회 폭동’을 선동한 것처럼 보이게 했다면서 명예훼손 혐의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14일엔 기자들에게 10억∼50억달러(약 1조4600억∼7조3200억원)를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측 명예훼손 소송 움직임은 상당히 구체화됐다. 로이터 통신이 입수한 서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측 변호사들은 BBC의 연설 편집으로 “대통령의 명성과 재정적 피해가 엄청났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측은 명예훼손 소송을 영국이 아닌 플로리다주에서 제기할 방침이다. 영국 명예훼손 소송 제기 시한인 1년이 이미 지난 것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플로리다주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택인 마러라고 리조트가 있는 지역이자 트럼프 지지 성향이 강한 곳이다.
다만 미국은 수정헌법 1조를 근거로 표현의 자유를 강력하게 보호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 측 주장이 힘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BBC는 해당 다큐멘터리가 미국에서 방송된 적이 없고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제공하지도 않아 플로리다 유권자들은 이를 시청할 수 없었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