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편집샵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등에서 ‘정치인 체포조’ 증언을 연달아 하는 사이 ‘윤 전 대통령 조력자’를 자칭한 전직 국정원장 측 인사가 접근해 홍 전 차장을 회유하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는 당시 현직이던 조태용 전 국정원장도 이 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의심한다.
19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특검은 지난 2월15일 김규현 전 국정원장의 보좌관 A씨가 홍 전 차장 보좌관 B씨와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 특검은 “A씨가 이 자리에서 B씨에게 ‘우리가 윤 대통령 변호인단을 돕고 있다’며 ‘(B씨가) 이번에 승진 누락된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는 국정원 관계자 진술을 확보했다.
A씨와 B씨가 만나기 전인 같은 달 4일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윤 전 대통령의 ‘정치인 체포 지시’를 증언했다. 홍 전 차장은 2월20일 탄핵심판에도 추가로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다. 특검은 김 전 원장 측이 자신을 윤 전 대통령 조력자라고 밝히며 접근한 점을 볼 때 윤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홍 전 차장의 2차 증인 출석을 앞두고 그를 회유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본다.
김 전 원장은 윤석열 정부 초대 국정원장으로 조 전 원장의 전임자다. 특검팀은 이런 점을 볼 때 김 전 원장이 퇴직 후에도 국정원 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했고, 진급을 미끼로 보좌관인 B씨를 시켜 홍 전 차장 증언에도 영향을 미치려 했다고 본다. 특검 조사결과 당시 국정원 소속 4급 공무원이었던 B씨는 올해 1월 3급 승진 대상이었다가 인사 직전 진급 대상에서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팀은 이 과정에서 김 전 원장이 당시 현직 원장이었던 조 전 원장과 교감했다고도 의심한다. 현직 원장을 건너뛰고 내부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조 전 원장은 당시 홍 전 차장의 증언을 무력화하려고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국민의힘 의원에게 계엄 당일 홍 전 차장의 행적이 담긴 국정원 폐쇄회로(CC)TV 영상을 반출한 혐의(국정원법 위반)로 지난 12일 구속됐다.
특검 측은 이런 점을 바탕으로 지난 16일 열린 조 전 원장에 대한 구속적부심사에서 그가 풀려나면 관련자 진술에 영향을 미치는 등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은 지난 17일 조 전 원장 측의 구속적부심 청구를 기각했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화위)가 5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종합보고서를 냈다. 진화위는 2만여건의 신청 사건 중 약 90%를 처리했다며 성과를 강조했지만, 진화위 노조는 “진실이 후퇴했다”며 반발했다.
진화위는 18일 서울 중구 진화위 대회의실에서 ‘2기 진화위 활동 종료 대국민 보고회’를 열고 종합보고서를 공개했다. 진화위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시기부터 한국전쟁 전후 불법 민간인 사망 사건 등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죽거나 다친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는 기관이다. 2기 진화위는 2020년 12월 활동을 시작해 오는 26일 활동을 마친다.
보고서를 보면 진화위는 신청사건 등 총 2만928건 중 1만8817건(89.9%)을 처리했다. 이 중 1만1913건은 ‘진실규명’이 결정됐고, 각하·불능·취하·이송된 사건은 총 6904건이었다. 조사중지 사건은 2111건으로, 이 중 1365건은 경찰과 군에 의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이었다. 북한군 등 ‘적대세력’ 관련 사건을 조사중지한 사례는 85건이었다.
보고서는 대표적인 성과로 ‘한국전쟁기 희생자 1만1000여명 진실규명’을 꼽았다. 진화위는 “개인들이 어떻게 연행되고 구금된 뒤 희생됐는지에 중점을 둬 조사하고, 군대와 경찰 기록 등 방대한 자료를 검토했다”며 “한국전쟁 전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6069건,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 3197건에 대해 진실규명했다”고 밝혔다.
집단 수용시설이나 해외 입양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도 성과로 강조했다. 진화위는 “1970~1980년대 ‘부랑인’을 대상으로 한 형제복지원에서의 감금, 폭행, 의문사 등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 책임이 공식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형제복지원이 1960년대부터 존재했음을 밝혀, 피해 인정 기간이 기존보다 약 15년 앞당겨지는데 기여했다”고도 했다.
반면 진화위 노조는 2기 활동과 관련해 지난 17일 백서를 내고 “일부 위원회 구성원은 특정 신념에 기초해 진실을 후퇴시켰다”고 비판했다. 김광동 전 진화위원장은 2023년 5월24일 “부역 혐의 희생자 중 실제 부역자가 있는지 세심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노조는 “적법절차 없이 살해됐다고 해도 ‘순수한 양민’만 희생자로 인정하겠다는 퇴행적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2기 진화위가 ‘백락정 사건’ 진실규명 결정을 취소한 점도 문제로 짚었다. 이 사건의 신청인은 “동아일보 서천지국장, 국민보도연맹 서천군지부장이던 백락용씨 동생 백락정씨가 1950년 6월27일 형 락용씨가 경찰에 구금되자 갈아입을 옷을 전달하러 갔다가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백락정씨의 아내가 면회했을 때는 밧줄로 묶인 채 전신에 피멍이 들어있었고, 곧 석방할 것이라고 했으나 행방불명이 됐다고도 했다. 1기 진화위는 “국민보도연맹과 관련돼 군·경에 의해 희생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기 진화위에서는 ‘군법회의 판결로 사형됐던 것’이라는 기록이 나왔다며 진실규명 결정을 취소했다. 노조는 “한국전쟁기에는 ‘부역자’라는 광범위하고 자의적 범주가 설정돼,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하려는 이승만 정부의 정치적 목적이 군법회의에 투영됐다”며 “최소한의 적법절차가 없어 ‘집단학살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허상수 전 진화위원은 “3기 진화위가 출범한다면, 2기 진화위의 문제점과 한계에 대해 진화위 차원에서 사과하고, 별도의 직권조사를 해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