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크당일 대장동 개발 1심 선고에 대한 항소 포기에 반발하며 ‘18명 지검장 성명’에 이름을 올린 박재억 수원지검장(54·사법연수원 29기·사진)이 지난 17일 사의를 표명하면서 “내가 물러나야 사태가 수습될 것 같다”고 주변에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여당이 검사장들의 성명을 ‘항명’으로 규정해 인사 조치나 징계, 형사처벌 등을 거론하는 등 파문이 확산하자 수습을 위해 자신이 책임지고 물러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18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박 지검장은 전날 법무부와 대검찰청 등에 사의를 표명하면서 지인에게 “내가 물러나야 검찰이 안정화되고 사태가 수습될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박 지검장은 정부가 성명에 이름을 올린 지검장들을 평검사로 전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지난 16일 오후부터 사퇴를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와 관련해 집단행동에 나선 검사장 등을 형사처벌, 감찰 및 징계, 평검사로 전보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정부가 검찰 내 반발 기류에 ‘강경 대응’을 예고하자 성명에 이름을 올린 지검장 18명 중 가장 선배인 박 지검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박 지검장의 이번 사임은 대장동 사건 1심 선고 항소 포기 파장에 따른 인사 변동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노만석 전 검찰총장 대행(대검찰청 차장)과 사의를 표명한 박 지검장, 송강 광주고검장은 모두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검사)과 같은 사법연수원 29기다.
박 지검장은 사의를 밝히면서 측근에게 “29기 검사장들의 역할이 마무리된 것 같으니 후배들에게 자리를 줘야 할 것 같다”는 취지의 말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부에선 29기 검사장들의 사퇴로 사태가 봉합될지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박 지검장의 사의를 두고 검찰 내에선 ‘검찰이 잘못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반발도 나온다. 서울의 한 검찰청에 근무하는 부장검사는 이날 기자와 통화하면서 “(대장동 항소 포기 설명 요구를 한 것에) 책임지고 사의를 표명하면, 결국 검찰들이 잘못했다는 걸 자인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며 “그게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검사들도 많다”고 말했다.
정부가 실제로 검사장들을 평검사로 인사 조치하는 등 강경 대응을 실행에 옮기면 검찰 안팎의 반발이 다시 터져 나올 수도 있다. 검찰 내에선 의견 표명에 대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것은 위법하다는 불만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구자현 총장 대행은 이날 출근길에 ‘고위 간부 사퇴가 이어지는데 어떻게 보는가’ ‘내부 반발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묵묵부답했다.
최근 제주에서 숨진 쿠팡 새벽배송 택배노동자가 타인의 아이디를 이용해 8일 연속 야간배송을 했다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왔다. 쿠팡은 새벽배송 노동자의 장시간 연속노동에 대해 시스템 상 7일 연속 근무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해 왔지만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대리점에서 일한 다른 택배기사는 무려 14일 연속 근무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와 ‘과로사 없는 택배만들기 시민대행진 기획단’은 18일 오승용씨 유족과 함께 제3차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고인은 타인 아이디를 사용해 7일을 초과하는 연속 장시간 노동을 했다. 쿠팡은 그간 7일 연속으로는 동일 아이디로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 앱에 로그인을 할 수 없기 때문에 7일 이상 연속 근무가 불가능하다고 밝혀왔다.
택배노조가 공개한 고인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지난 9월5일 대리점 관리자는 “이번달 다른 아이디 배송 없어?”라고 물었다. 이에 고인은 “김○○ 7일 319건” “한 건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타인 아이디를 활용한 배송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고인이 해당 주에 타인 아이디를 이용해 8월1~8일 8일 연속 야간배송 업무를 수행한 근태기록도 나왔다. 노조는 “쿠팡이 자체 대책으로 내세운 격주 5일제는커녕 7일 연속 근무 제한조차 현장에서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며 “무제한 노동이 가능한 과로 구조가 방치되고 있음을 증명한다”고 했다. 쿠팡 택배노동자들은 CLS가 직접 운영·관리하는 앱을 사용해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CLS가 이러한 사실을 모를 수 없다고 노조는 주장했다.
해당 대리점에는 쿠팡이 약속한 ‘격주 주 5일제’가 적용되지 않는 기사가 여럿이었다. 주 7일 이상 연속 근무한 기사가 빈번하게 발견됐다. 이곳에서 근무한 A씨는 10월12일부터 25일까지 14일 연속 일했다. B씨도 10월16일부터 25일까지 10일 연속 근무했다.
앞서 발표된 1·2차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인은 주 6일 연속적이고 고정적인 야간노동을 해왔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는 하루 평균 11시간30분 일했고, 주 노동시간은 83.4시간에 달했다. 노조는 고인이 근무했던 쿠팡 제주1캠프에서 택배노동자들에게 분류 작업을 전가해왔다는 동료 기사들의 일관된 증언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유족과 대책위, 시민사회는 “이 비극의 뿌리에는 과로를 낳는 쿠팡의 노동시스템이 놓여 있다”며 “쿠팡은 무제한 노동을 방치한 과로 구조를 인정하고, 현장에서 작동하는 실질적인 과로사 방지 대책을 즉각 마련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