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수납전문가 이재명 대통령은 16일 한·미 관세협상 타결에 역할을 한 기업인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대미 투자가 너무 강화되면서 국내 투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도록 여러분이 잘 조치해줄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기업 총수들은 각 기업의 투자·고용 계획을 소개하며 협력 의지를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제일 필요한 규제 완화, 철폐 등을 구체적으로 지적해주면 신속하게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한·미 관세협상 후속 논의를 위해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민관 합동회의에서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만큼 중요한 게 없고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첨병은 기업”이라며 “정부는 기업인들이 기업 활동을 하는 데 장애가 최소화되도록 총력을 다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 14일 미국과의 관세·안보 분야 협상 결과물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설명자료) 도출 소식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직접 발표한 데 이어, 이날 관세 인하 조치와 대규모 대미 투자 약정에 직접 영향을 받는 기업인들과 만나 3시간 가까이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 등 총수급 7명이 참석했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대통령실 참모들도 함께했다.
이 대통령은 규제 완화를 포함해 정부가 기업 활동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제가 세금 깎아달라는 얘기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세금 깎아가며 사업해야 할 정도면 국제 경쟁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그보다 여러분에게 제일 필요한 규제 완화, 철폐 등 가능한 것을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면 신속하게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뭐든지 할 수 있는 건 다 할 것”이라며 “(나에게) 친기업, 반기업 이런 소리를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연구개발 또는 위험 영역에 투자해서 후순위 채권을 발행하는 것을 우리가 인수한다든지, 손실을 선순위로 감수하는 등의 새로운 방식도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과 경영의 상생을 언급하며 사회적 대타협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근본적으로는 노동 없이 기업하기 어렵고, 기업 없이 일자리와 노동도 존립할 수도 없다”며 “고용 유연성, 불안정 문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공포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야 되는데, 재원 조달 문제를 대대적 논쟁을 통해 대타협에 이르러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또 “대미 투자가 너무 강화되면서 국내 투자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도록 여러분이 잘 조치해줄 것으로 믿는다”라며 “균형 발전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지방의 산업 활성화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관세협상 타결로 경영 불확실성을 걷어내게 된 기업인들은 이날 회의에서 관세협상 타결을 이끈 정부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협상 이행 계획과 향후 국내 투자·고용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 회장은 “투자 확대 및 청년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과의 상생에 더욱 노력하겠다”며 “지난 9월 약속대로 향후 5년간 6만명을 국내에서 고용하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국내 투자와 고용을 더 적극적으로 진행하겠다”며 “점점 투자 예상 비용이 늘고 있어 용인(반도체 클러스터)에 약 600조원 규모의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정의선 회장도 “국내에서 2030년까지 총 125조원의 대규모 투자를 추진할 예정”이라며 “올해 7200명이던 채용 규모를 내년 1만명으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국내 2위인 홈플러스 노동자와 협력업체 사람들이 지난 17일 추운 날씨 속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258배를 올렸다. 지난 3월 법정관리 돌입 후 258일을 맞았지만, 사태 해결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자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한 몸짓이었다. 안수용 노조 지부장 등은 지난 8일부터 단식농성에도 돌입했다.
홈플러스는 그간 비상·생존 경영 체제 아래 점포 폐점과 무급휴직 등을 추진했지만 매달 수십억원대 적자가 누적되고 공과금 미납 규모는 900억원에 달한다. 현재로선 새 주인을 찾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말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AI 핀테크 기업 하렉스인포텍과 부동산 임대·개발업체 스노마드 2곳 모두 유통 경험·자금력이 부족해 본입찰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게 업계 평가다. 만일 본입찰이 무산되고 인수자를 찾지 못하면 회사는 청산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직접고용한 2만명과 2800여 협력업체 노동자까지 약 10만명의 일자리가 경각에 달렸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기업 가치와 성장보다 단기적 투자금 회수에 매몰된 금융자본 경영에서 찾아야 한다. 국내 최대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는 2015년 홈플러스 인수금의 상당 부분을 차입으로 조달하고, 회사 부동산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며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특히 법정관리 신청 직전까지 카드매출 채권 등을 담보로 수천억원의 기업어음(CP) 등을 발행한 사실이 드러나 ‘먹튀’ 논란을 자초했다. 법정관리 신청도 심야에 군사작전하듯 온라인으로 해 이해당사자들 뒤통수를 쳤다. 금융당국이 이런 의혹들을 조사해 검찰에 넘겼지만 검찰 수사는 감감무소식이다. MBK가 홈플러스 경영권 인수를 위해 만든 펀드 구조나 투자 위험성을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알렸는지에 대한 금융당국 조사도 진전된 소식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러니 당국이 홈플러스 지원에 전제 삼은 김병주 회장의 사재 출연도 ‘생색내기’ 수준에 그치고 있는 것 아닌가.
홈플러스 사태는 단순히 유통기업 몰락 문제가 아니다. 금융자본의 부도덕한 경영 방식, 대규모 실직, 선택 폭이 줄어든 소비자들의 불편, 지역경제 침체 등이 얽힌 문제다. 당국은 이번 사태 원인을 신속히 규명해 엄중한 책임을 묻고, 피해 확산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해선 제2의 홈플러스 사태가 반복될 수 있고, 금융 선진화나 소비자·유통 산업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