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수납전문가 의병의 고장, 경남 의령 유곡면 세간리에는 ‘현고수(懸鼓樹)’라는 나무가 있다. 홍의장군 곽재우의 고향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느티나무다. 사람 키를 조금 넘는 자리에서 직각으로 꺾인 독특한 생김새의 줄기를 마주하면 누구라도 뭔가를 걸면 좋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이 땅을 지키자는 큰 뜻 하나로 선비 곽재우는 붓을 내려놓고 의병을 일으켰다. 전투 경험이 없는 의병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신호가 필요했다. 의병장 곽재우는 그때 마당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이 나무에 북을 걸었다. 훈련 집합 신호도, 적군을 향한 출정 신호도 이 나무에 건 북으로 알렸다. ‘북을 거는 나무’라는 뜻의 ‘현고수’라는 이름은 그렇게 지어졌다.
대부분의 노거수가 ‘천연기념물’이나 ‘지방기념물’로 지정되는 것과 달리, 이 나무는 오랫동안 ‘문화재자료’로 분류됐다. 생물자원 가운데에는 흔치 않은 사례다. 북을 걸었다는 사실을 넘어, 풍전등화의 위기를 이겨내려 한 백성들의 절박함이 깃든 문화유산이라는 증거다.
그리고 2008년에는 마침내 ‘의령 세간리 현고수’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에 지정됐다. 우리 민족의 듬직한 인문학적 가치를 담은 민족 최고 자연유산으로 인정된 것이다.
오랜 세월이 남긴 깊은 상처로 나무줄기의 안쪽은 썩어 텅 비었지만, 여전히 넓은 그늘을 드리우며 사람들을 품어 안는다. 그때 그 의병들의 함성 소리는 사라졌지만, 나뭇가지에 스미는 바람결에는 여전히 옛 의병들의 기개가 담겨 있는 듯하다.
의령군은 의병의 넋을 기리는 ‘의병제전’을 이 나무 앞에서 성화를 채화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500년 넘는 긴 세월 동안 ‘의령 세간리 현고수’는 옛사람들의 우국충절을 증거하며, 그 후예들과 더불어 묵묵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말하지 않으면서도 오래전의 북소리보다 더 큰 침묵의 웅변으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큰 나무다.
한국 인디음악의 결정적 순간을 만든 개척자들은 누구일까. 음악을 통해 관객과 소통해 온 EBS <스페이스 공감>이 한국 인디음악 30년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파이오니어 시리즈’를 오는 21일부터 매주 금요일 밤 방송한다.
2025년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인디음악이 시작된 지 30년째를 맞았다는 점에서 특별한 해다. 1995년 홍대 앞 라이브 클럽을 중심으로 시작된 포크, 펑크, 모던록 등 다채로운 장르의 인디음악들은 음악적 다양성과 실험성을 확장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지금 한국의 대중음악은 세계인의 공감과 찬사를 이끌어내는 거대한 흐름으로 성장했다.
<스페이스 공감>의 ‘파이오니어 시리즈’는 1995년부터 지금까지 대중음악의 지형을 확장해 온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 인생을 집중 조명하고, 한국 인디 신의 결정적 순간들을 되짚어본다. 총 10부작으로 제작된 이번 다큐멘터리는 크라잉넛, 자우림, 더 콰이엇, 장영규, 바밍타이거 등 한국 인디신을 대표해 온 10팀의 아티스트들 만나보고 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곡들을 라이브로 전한다.
2004년 4월 1일에 개관한 <스페이스 공감>은 생동감 있는 라이브 공연을 통해 다양한 장르 음악의 매력을 소개해왔다. 지난해엔 방송 20주년을 맞아 대중문화 전문가 11인과 함께 ‘2000년대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을 선정하고, 그중 스무 팀의 명반을 집중 조명한 ‘명반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20부작으로 방송한 바 있다.
올해는 인디 30주년을 맞아 ‘파이오니어 시리즈’의 프롤로그 격인 전시와 야외 공연을 개최해 다양한 연령층의 음악 팬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났다. 지난 8월 서울 노들 갤러리에서 열린 특별 전시 ‘1995-2025 45개의 음(音)과 한 마디’에서는 록, 힙합, 재즈, 전자음악 등 대중음악계를 다채롭게 만든 파이오니어들과 그들이 남긴 어록을 조명했다. 9월에는 노들섬 잔디마당에서 한국 인디음악 30주년 기념 공연 ‘위 아 파이오니어스’를 열어 2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