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폰테크 “미국은 한 푼도 안 내지 않냐. 그런데 (수익을) 5대 5로 배분하는 게 말이 되나 싶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수익 배분 방식 등 MOU가 불공정한 것 아니냐’는 한 기자의 질의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여기(MOU) 내용 중 공정한 내용이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이렇게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라는 점 이해해주면 좋겠다”며 이같이 답했다.
그는 이어 “일본이 합의해놓은 상황에 우리가 일본보다 나중에 협상하다 보니 바꿀 수 없는 부분이 수익을 5대 5로 나누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김 장관은 이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총 3500억달러 규모의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MOU’에 서명했다.
MOU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기금을 통해 투자할 2000억달러에 대한 수익 배분은 원리금 상환 전까지는 한국과 미국이 각각 5대 5 비율로 나눠 갖는다. 다만 원리금 상환 이후부터는 이 비율이 한국 1대 미국 9로 바뀐다. 한국 정부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일정 기간(20년) 내 전체 원리금 상환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경우 수익 배분 비율 조정이 가능하도록 단서 조항을 넣었다.
MOU 서명은 이날 오후 1시쯤 화상 전화로 진행됐다. 김 장관은 “러트닉 장관이 화상 전화를 하자고 오후 12시20분쯤 연락이 왔다”며 “(예전에) 화상 회의할 때 항상 목소리 톤이 올라가 잔뜩 긴장했는데 ‘축하한다’며 자기(러트닉 장관)가 서명하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나도 서명하고, 둘이서 (화상으로) 전화기 붙들고 악수하고 포옹도 하며 마무리 지었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양국 간 협상할 수 있는 신뢰를 형성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국가 간 이해가 부딪힐 때마다 진정성 있는 대화와 신뢰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며 “미국과 협상 과정에서 축적한 게 있다면 대화할 만한 파트너구나. 프로 대 프로로 서로 신뢰할 상대라는 라포(친근감·신뢰감 형성을 기초로 서로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를 형성한 게 앞으로 투자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시작돼 온 한·미 관세협상의 최종 결과물이 14일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형태로 공개됐다. 이로써 지난 7월30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한·미 정부가 큰 틀에서 합의한 이후 100일 넘게 끌어오던 후속 협상도 모두 마무리됐다.
대통령실과 미국 백악관이 이날 발표한 조인트 팩트시트에는 지난달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직후 관세협상 타결 소식이 전할 때 대통령실이 설명한 내용이 대부분 그대로 포함됐다. 여기에 더해 팩트시트에는 지난 8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1차 한·미 정상회담 당시 합의한 미국산 구매·투자 계획 등까지 포함돼 한꺼번에 공개됐다.
팩트시트에 명시된 관세·통상 분야의 합의사항을 보면, 크게는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를 15%로 인하하고 한국이 총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중 대미 투자와 관련해서는 이날 체결된 양해각서(MOU)에 세세한 설명이 담겼고, 팩트시트에는 큰 틀에서 합의한 내용과 부대조건에 관한 내용이 포함됐다.
3500억달러 가운데 1500억달러는 조선업 투자에 배정하고, 나머지 2000억달러는 연간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투자한다는 내용이 팩트시트에 들어 있다. 투자 분야에 관해서는 ‘조선, 에너지, 반도체, 의약품, 핵심광물, 인공지능(AI)·양자 컴퓨팅을 포함하되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분야’라는 표현을 통해 제한을 두지 않았다.
협상 막바지까지 미국의 요구가 강력했던 현금 투자와 관련해서는 ‘외환시장 안정’이라는 소제목 아래 연 200억달러라는 상한선이 명시됐다.
팩트시트에는 “양국은 양해각서(MOU) 상 공약이 시장 불안을 야기해선 안 된다는 상호 이해에 도달했다. 한국이 어느 해에도 연간 200억달러를 초과하는 금액의 조달을 요구받지 않을 것”이라고 씌어 있다. 또 “한국은 가능한 한 미화를 시장에서 매입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해 조달함으로써 시장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을 최소화할 것”, “원화의 불규칙한 변동 등 시장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한국은 조달 금액과 시점을 조정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관세율 인하와 관련해서는 미국이 지난 4월 대통령 행정명령에 따라 부과하는 상호관세에 있어 한국에 15%의 관세율을 적용한다고 확인했다.
팩트시트 발표와 MOU 체결이 지연되면서 국내 제조사의 피해 우려가 제기됐던 자동차·부품에 대한 관세율은 25%에서 15%로 내린다. 팩트시트에는 한국산 자동차·부품, 목재·파생물에 대한 관세율을 15%로 인하하고, 추가 관세 부과는 없다고 명시됐다. 고율의 관세 부과를 예고했던 의약품에 대한 관세도 15%가 적용된다.
관세율을 확정하지 않은 반도체(장비 포함)에 대한 관세는 “한국의 반도체 교역 규모 이상의 반도체 교역을 대상으로 하는 미래 합의에서 제공될 조건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을 부여하고자 한다”고 명시됐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반도체는 한·미 합의에 포함돼 있지 않다”고 해서 논란을 빚었지만,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설명대로 팩트시트에 반도체 대미 수출 경쟁국인 대만을 상정한 문구가 포함된 것이다.
항공기 부품, 복제 의약품(제너릭)과 일부 천연자원에 대해서는 무관세를 적용받기로 했다.
한국 시장 내 자동차 안전기준, 농업, 디지털 등 비관세장벽 분야와 관련한 합의 내용도 있었다.
현재 미국 내 안전기준을 충족한 자동차를 한국 안전기준도 통과한 것으로 인정하는 물량은 연 5만대인데, 이 상한선을 폐지하는 데 양국은 합의했다. 김 실장은 “지난해 미국산 자통차의 총수입 대수가 4만7000대 정도로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미국산 원예작물 등 농산품 전담 데스크를 설치한다는 데에도 합의했다. 특정 명칭을 사용하는 미국산 육류와 치즈에 대한 시장 접근은 유지하기로 했다. 김 실장은 “쌀, 쇠고기 등 우리 농업의 민감성을 고려해 추가 시장 개방은 담지 않았으며, 양국 간 협력과 소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망 사용료나 온라인 플랫폼 규제 등 디지털 분야에서는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이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장관급 공동위원회를 통해 구체 계획을 확정하기로 했다.
김 실장은 이번 공동 발표에 대해 “양국 간 관세 합의 사항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문으로 발표됐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비관세 사안들도 원칙적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양국 간 교역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상호 간 호혜적인 방향으로 무역을 확대해 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은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를 주말 사이 개최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하고 주요 경제단체·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회의에서는 이날 발표된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의 세부사항에 대한 설명과 국내 기업들의 대미 투자 방안 등에 관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민관 합동회의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 등 한·미 관세협상 결과와 직결되는 사업을 영위하는 주요 기업 총수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