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용접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이 12일 구속됐다. 그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법정증언을 흠집내기 위해 국정원 폐쇄회로(CC)TV 영상을 국민의힘 의원에게만 제공해 국정원법상 정치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계엄 관련 사실을 국회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도 하지 않은 혐의도 있다. 앞서 두 차례 주요 피의자 신병 확보에 실패해 다소 움츠러들었던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는 수사 막바지에 자신감을 되찾은 분위기다.
서울중앙지법 박정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5시30분쯤 국정원법 위반, 직무유기, 위증, 증거인멸 등 혐의를 받는 조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 부장판사는 전날 오전 10시10분부터 오후 2시쯤까지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하고 15시간여 뒤 결과를 내놨다. 그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조 전 원장은 지난 2월 윤 전 대통령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에서 정치인 체포 지시를 폭로한 홍 전 차장의 증언을 흠집내기 위해 국정원 비서실을 동원해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홍 전 차장의 계엄 날 행적이 담긴 국정원 CCTV 영상을 반출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특검은 이 행위가 국정원장에게 정치중립 의무를 부과한 국정원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 밖에도 조 전 원장은 지난해 12월3일 윤 전 대통령이 불법 계엄을 선포하기 전 대통령실에 있으면서 계엄 선포 사실을 미리 알았지만 국회에 보고하지 않았고, 계엄 선포 이후 홍 전 차장에게서 “이재명, 한동훈을 잡으러 다닐 것 같다”고 보고를 받고도 뭉갠 혐의도 받는다. 특검은 조 전 원장이 ‘국가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대통령 및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한다’는 국정원법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직무유기 혐의를 적용했다.
특검과 조 전 원장 양측은 전날 영장 심사에서 주로 홍 전 차장의 ‘정치인 체포 증언’이 맞느냐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고 한다. 조 전 원장 측은 “CCTV 영상 반출은 홍 전 차장의 증언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해 이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직무유기 혐의 역시 “계엄 선포 이후 홍 전 차장 보고 내용만으론 정치인 체포를 확실히 인식하기 어려웠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특검 측은 조 전 원장이 홍 전 차장 주장의 신빙성을 고의로 훼손하기 위해 CCTV 영상 반출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영장 심사에서 조 전 원장이 그가 불구속 상태에서 계속 수사를 받으면 그에게서 범행을 지시받은 당시 국정원 직원 등 진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이 조 전 원장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특검의 남은 수사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검팀은 앞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구속영장 청구가 법원에서 기각돼 다소 위축됐던 터였다. 박지영 특검보는 “국가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 미치는 상황을 보고하도록 한 규정이 시행된 후 이 규정 위반을 직무유기로 의율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SK증권과 사모펀드사가 했던 ‘마유크림’ 투자의 손실과 관련해 투자자들에게 경영상 위험 요소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주의의무 위반’ 사실이 대법원에서 인정됐다. 다만 대법원은 배상액 산정 부분에 잘못이 있어 사건을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다올저축은행이 SK증권과 워터브릿지파트너스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지난달 16일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15년 SK증권과 워터브릿지파트너스가 마유크림 제조사 비앤비코리아에 투자하기 위해 사모펀드(PEF)를 만들고 PEF를 통해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마유크림은 말기름을 원료로 만든 화장품인데, 중국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다. 비앤비코리아는 마유크림을 제조해 화장품 기업 클레어스코리아에 공급하고 있었다.
SK증권과 워터브릿지는 2015년 4월 예비 투자자들에게 투자를 권유하면서 “비앤비코리아가 마유크림 ODM(제조자개발생산) 회사이고, 클레어스와 안정적 계약관계를 통해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이 담긴 투자제안서와 재무실사보고서를 제공했다. 이후 다올저축은행은 20억원을 출자해 펀드 지분 2.3%를 보유하는 LP(출자자)가 됐다. 그 밖에 리노스(현 폴라리스AI) 등 다수 LP를 모집해 SPC는 순조롭게 비앤비를 인수했다.
하지만 거래가 마무리될 쯤 클레어스가 자체 생산공장 신축을 추진하고 한·중 양국 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이 불거지면서 실적이 악화됐고, 비앤비의 매출이 급감, 자금 회수가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러자 다올저축은행을 비롯한 LP들은 2018년 SK증권과 워터브릿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SK증권 등이 운용사(GP)로서 선관주의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해 투자 손실을 보게 됐다는 취지였다. 실제 거래가 마무리되기 전인 2015년 5월 “클레어스가 자체 생산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됐고, SK증권과 워터브릿지는 ‘판매사가 공장을 신축한다면 투심 통과가 어렵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 철회할 리스크가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도 이를 LP들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은 이런 점을 들어 “피고들(SK증권·워터브릿지)은 이 사건 회사(비앤비)와 관련한 정보의 진위를 비롯한 수익구조와 위험 요인에 관한 사항을 합리적으로 조사한 다음 올바른 정보를 원고(다올저축은행)에게 알리지 않았다”며 “투자 대상에 대한 중요한 정보제공 의무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SK증권과 워터브릿지의 다올저축은행에 대한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한 2심의 결론은 정당하다고 봤다.
다만 2심이 다올저축은행의 손해를 투자금 전액인 20억원이라고 본 것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손해액은 투자금 전액이 아니라 미회수금액(투자금-회수금액)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2심은 2021년 12월 기준 SPC의 순자산가치를 0원으로 평가해 회수 가능 금액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2020년 6월 PEF 해산 등기가 마쳐졌지만, 청산절차가 종결됐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고, 해산 등기 이후에도 두 차례 사모사채 만기를 연장하는 등 사업을 계속 영위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원고가 보유하는 지분의 가치는 SPC의 순자산가치보다 비앤비 회사의 주식 가치에 좌우될 것”이라며 2심이 회수 금액을 평가하면서 이런 부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PEF 청산 절차 진행 상황과 회사의 주식 가치 등을 고려해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이 있는지를 심리하여 손해 발생 시점과 손해액을 판단했어야 한다”며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