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불법촬영변호사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했지만 여전히 수많은 ‘오늘의 전태일들’이 권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13일 오전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묘역은 ‘전태일 열사 55주기 추도식’을 찾은 시민과 노동계 인사들로 붐볐다. 참석자들은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11월 13일을 ‘노동인권의 날’로 지정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박승흡 전태일재단 이사장은 추도사에서 “전태일이 살던 시대는 산업화의 파도 속에서 노동자의 희생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며 “그가 근로 환경 개선을 외친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는 여전히 불평등과 양극화의 위기 앞에 서 있다”고 짚었다.
정연실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은 “안정적인 일자리는 점점 없어지고 비정형 노동자는 눈덩이처럼 확산하고 있다. 노동자로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특고(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프리랜서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투쟁이 계속돼야 한다”며 “11월 13일 국가기념일 지정으로 온 사회가 함께 전태일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도식에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정연실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 등 노동계 인사를 비롯해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김창년 진보당 공동대표, 엄정애 정의당 부대표 등 각계 100여 명이 참석했다. 전태일 열사 유족인 전순옥 전 국회의원과 전태삼·태리씨도 함께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우원식 국회의장,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조화를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11월 13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라!”고 외쳤다. 전태일재단은 최근 ‘11월 13일 국가기념일 지정 전태일 시민행동’을 출범해 이날을 ‘전태일의 날’로 지정하는 사회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앞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서울 종로3가역 명칭을 ‘전태일역’으로 바꾸고, 11월 13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이날 추도식에서는 제33회 전태일 노동상 시상식도 열렸다.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지게차 결박 사건을 세상에 알린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이 개인 부문을 수상했다. 공로상에는 고(故) 유희 십시일반 음식연대 밥묵차 대표와 월간 작은책이, 특별상에는 양대 노총 타워크레인 노조가 선정됐다.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은 이번 주 시민 참여형 추모주간 ‘전태일을 찾아라’를 진행한다. 이날 오후 7시 30분에는 ‘전태일을 노래하다’ 공연이, 14일에는 창작시 낭송회와 시화전 ‘전태일을 쓰다’, 15일에는 청계천과 전태일다리, 평화시장 일대에서 시민 참여 어반스케치 ‘전태일을 그리다’가 열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며 산업재해 근절을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최근 울산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도 수많은 전태일들이 일터에서 생과 사의 경계에 놓여 있다”며 “산업 안전의 패러다임과 인식을 근본부터 새롭게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는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나 17살부터 동대문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재봉사로 일했다. 하루 14시간씩 일하던 어린 여공이 폐렴으로 해고되는 모습을 보고 열악한 노동 현실에 눈을 떴다. 그는 동료들과 ‘바보회’ 및 ‘삼동회’를 결성해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했으나 현장의 변화는 없었다. 결국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를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분신했다. 그의 죽음은 한국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13일 오전 7시 대전 동구 대전혜광학교(대전시교육청 제27지구 제25시험장).
학교 앞에는 긴장된 표정의 수험생과 학부모, 학교 관계자들이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시각·뇌병변 등 장애가 있는 25명의 수험생이 이곳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이날 학교 분위기는 다른 시험장과는 사뭇 달랐다.
여타 시험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교 밖 응원전이나 북적이는 인파는 없었다. 대신 교문 앞에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응원의 기운이 감돌았다. 대전혜광학교는 장애 수험생의 이동 편의를 위해 학부모 차량의 교문 진입을 허용하고 있었다. 차가 한 대씩 교문 안으로 들어설 때마다 경찰과 모범운전자회 회원들이 이동 경로를 확보하며 “천천히 들어오세요”라고 안내했다.
차에서 내린 수험생들은 보호자와 함께 시험장으로 향했다. 한 어머니는 “우리 ○○아, 평소처럼만 하면 돼”라며 아이의 어깨를 토닥였고, 다른 학부모는 교문 앞에서 시험장으로 향하는 아이를 바라봤다.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자녀를 내려준 뒤에도 운동장 인근에 차를 잠시 세워두고 다시 시험장까지 동행하며 마지막 응원을 건넸다.
교문 주변에는 경찰관과 학교 관계자, 동구청 직원 등이 배치돼 수험생들의 이동을 도왔다.
동구 관계자는 “오전 6시부터 현장을 지키며 학생들이 무리 없이 시험장에 입실하는 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당국은 장애 유형에 따라 다양한 편의를 제공했다.
시각장애가 있는 수험생에게는 시험지 확인용 확대경을 제공하고, 청각장애가 있는 경우 보청기 착용을 허용한다. 뇌병변 등으로 손 사용이 어려운 학생에게는 답안지를 대신 옮겨 적는 보조 인력이 함께 입실해 수험생의 확인 절차까지 돕는다. 시·청각장애 수험생 등은 일반 수험생보다 1.5배 긴 시간을 부여받아 문제풀이에 집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