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대비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이 11일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의 계엄 당일 행적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선별적으로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 “홍 전 차장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판단해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불법 계엄 선포 전 이 사실을 전달받고도 국회에 바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당시 계엄의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조 전 원장 측은 이날 오전 10시10분부터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 심사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조 전 원장은 정치 중립 의무를 규정한 국정원법을 위반했다는 혐의 등으로 지난 7일 조은석 내란 특별검사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그는 홍 전 차장이 지난 2월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등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정치인 체포조 운용을 지시했다”고 주장하자, 이 증언을 무너뜨리기 위해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홍 전 차장의 계엄 당일 행적이 담긴 CCTV 영상을 반출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조 전 원장 측은 영장 심사에서 “홍 전 차장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홍 전 차장 영상 공개를 결정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에게만 영상을 제공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당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장 명의로 요청이 왔고, 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영상을 모두 제출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조 전 원장 측은 당시 국회 차원의 요청이 오기 전 국정원 비서실을 동원해 ‘법원 제출용’ 등 명목으로 미리 영상 반출을 위한 서류작업을 해놨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홍 전 차장이 당시 헌재에서 2차 증언을 앞두고 있었고, 헌재에서 CCTV 요청을 할 것이라고 예상해 미리 준비한 것”이라고 소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정원 비서실 직원이 국민의힘 의원 측 보좌관과 연락을 주고받은 것을 두고는 “국민의힘 측에서 CCTV를 빨리 달라고 요구해서 조금 더 기다리라는 취지로 소통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조 전 원장은 윤 전 대통령이 불법 계엄을 선포하기 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미리 이를 전달받고도 국회에 즉시 보고하지 않았다는 혐의에 대해선 “계엄 선포 사실을 전해 들을 당시 위법성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그가 윤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계엄 관련 지시는 물론 문건을 받은 적 없다’는 취지로 허위 증언을 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법정에서 처음 증언을 하는 과정에서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을 강조하다 보니 단언적으로 얘기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조 전 원장은 이날 영장 심사에서 일부 발언권을 갖고 이런 점을 직접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원장의 구속 여부는 이날 늦은 밤이나 오는 11일 새벽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 여사가 통일교 측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진 샤넬 가방 3개와 구두, 목걸이가 법정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김 여사 측은 명품 선물을 받은 뒤 사용하지 않고 모두 반환했다고 주장했는데, 이와 관련해 재판부가 직접 검증에 나섰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재판장 우인성)는 12일 자본시장법·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김 여사의 8차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오전에는 통일교 측으로부터 물건을 받아 김 여사에게 전달한 ‘건진법사’ 전성배씨가 재차 증인으로 출석했고, 오후 재판에서 가방 등 명품에 대한 검증이 진행됐다. 재판부는 검은색 장갑을 끼고 특검팀이 증거로 제출한 흰색 샤넬 가방, 검은색 샤넬 가방, 노란색 작은 샤넬 가방, 흰색 구두, 그라프 목걸이를 하나씩 차례대로 확인했다. 특검팀과 김 여사 측 대리인단인 유정화·최지우 변호사도 옆에서 맨눈으로 살펴봤다. 재판부는 가방 내부와 앞뒷면 등을 꼼꼼히 확인한 뒤 네다섯 번 사진을 촬영하고, 목걸이가 담긴 상자를 열어 물품을 살짝 만져보기도 했다.
재판부는 “흰색 가방은 (보호용) 비닐이 없고 긁힌 것 같은 착용감이 있었다. 내부 버클의 지퍼 등에는 비닐이 그대로 있었고, 가방의 모양을 잡는 천 등은 내부에 없었다”고 했다. 검은색 가방과 노란색 가방은 내부 버클에 비닐이 있었고, 먼지가 앉지 않도록 덮어놓는 검은 천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구두는 바닥의 사용감이 있었고, 목걸이는 케이스에 고정된 상태는 아니었고 사용감 여부는 육안으로는 확인이 불가했다”며 “증거로 제시된 사진의 원물을 오늘 법정에서 검증한 것으로 하고 이 결과는 조서에 기재하겠다”고 했다.
이날 재판부는 김 여사 측이 건강 이상을 이유로 요청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붙인 석방) 심문도 열었다. 김 여사 측은 지난 3일 어지럼증과 불안 증세가 심각하다며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변호인단은 “예전에도 피고인이 몇 번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구치소 생활을 하다 보니 건강이 상당히 안 좋다”며 “재판도 마무리 단계고 증인신문도 거의 끝나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보석 시 주거지를 자택과 병원으로 한정하고,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전자장치를 부착하는 등 조건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다”며 “구치소 말고 자택에서 재판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반면 특검팀은 사안의 중대성을 강조하며 김 여사가 유모·정모 전 행정관, 전성배씨 등과 진술을 모의하고 허위 진술을 한 정황도 확인된다고 했다. 특검은 “유·정 전 행정관이 8월부터 서울 남부구치소에서 김 여사를 수차례 접견했다. 이들은 이 재판의 증인신문에 출석하기로 했는데도 피고인 접견 직후 의도적으로 나오지 않았다”며 “석방을 허가하면 이들과 진술을 맞출 가능성이 크고, 전씨를 회유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안경과 흰색 마스크를 쓰고 교도관의 부축을 받아 들어온 김 여사는 재판과 보석 심문이 진행되는 내내 별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듣고 있었다. 피고인석에 놓인 책상에 잠깐 엎드려 있다가 다시 자세를 고쳐 앉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