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강간변호사 이재명 대통령은 2일 202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기획단이 공개한 특별 홍보영상 촬영 미공개 사진을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홍보영상에서 항공기 유도원으로 2초 카메오 출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제부터 진짜 #주차관리남. 감독님 이거 맞아요?”라는 글과 함께 용산 대통령실에서 항공기 유도원 복장을 하고 영상 촬영을 하는 사진 7장을 올렸다. 이 대통령은 ‘#GD #박찬욱 #박지성 #페기구 #안성재 #장원영 그리고... #이재명 #레츠고’라는 해시태그도 함께 적었다.
이날 공개된 홍보영상은 영상제작사 돌고래유괴단 신우석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APEC 홍보대사인 가수 지드래곤(본명 권지용)이 주연으로 출연했으며, 영화감독 박찬욱,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박지성, 가수 장원영(아이브), 셰프 안성재, DJ 페기 구 등 각 분야의 유명인들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이 대통령은 경광봉을 들고 항공기 지상 이동을 유도하는 항공기 유도원으로 2초가량 얼굴이 나온다. ‘세계가 경주로 모인다’는 메시지 아래 혼란을 극복하고 질서 있게 국제 사회에 복귀한 대한민국을 은유하는 장면을 표현했다고 준비기획단은 전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월 대통령실에서 직접 항공기 유도원 옷을 입고 영상을 촬영했다. 공항 배경은 CG(컴퓨터 그래픽)로 합성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신우석 감독의 카메오 요청을 이 대통령이 수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이번 영상은 제작을 위한 최소한의 실비만 지원됐고 제작진과 출연진 전원이 출연료 없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전쟁에서 교착상태라는 게 있다. 양군의 전력이 엇비슷해 조금의 진전도, 변동도 없는 상황을 뜻한다. 1차 세계대전이 그런 경우였다. 서부 전선에서 독일군의 초기 돌격이 저지된 후 양군은 참호를 파고 대치하며 교착상태에 빠졌다.
정치에도 그런 교착상태가 있다. 즉 세력 A와 세력 B가 투쟁할 때 어느 쪽도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한 채 둘 다 탈진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세력은 도돌이표처럼 각자의 주장만 무한 반복하며 출구나 타협책을 전혀 찾지 못한다. 이에 국민들은 정쟁에만 몰두할 뿐 삶을 돌보지 않는 정치에 염증과 무관심을 내보이며 불만과 좌절감을 쌓아나간다.
역사에서 교착상태는 기성 헤게모니가 붕괴한 결과로 나타난다. 여기서 헤게모니란 강제적 지배가 아닌 자발적 동의에 기초한 지도력이고, 이 지도력은 자신의 생각을 ‘상식’으로 제시해 자연스럽게 지배하는 힘이다. 그런 헤게모니 역량이 소진되면 위기가 온다. 미국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이탈리아 사상가 그람시의 말을 인용해 헤게모니 위기를 이렇게 요약한다.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런 공백 상태에서는 아주 다양한 병적인 증상이 출현한다.”
그런데 헤게모니 위기에서 경합하는 두 세력의 투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 홀연히 제3의 세력이 등장해 판을 뒤엎고 상황을 평정한다. 이것이 보나파르트주의다. 이 명칭은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에서 유래했다. 정치적 낭인이던 그는 1848년 혁명의 기회를 움켜쥐고 나폴레옹의 후광을 이용해 국민투표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 나폴레옹 3세로 즉위했다. 당시 프랑스의 부르주아 지배층은 지배력을 행사하기 힘든 상황에서 신비한 망토를 걸친 개인으로 대표되는 국가에 자신들의 권력을 양도한 것이다. 이에 나폴레옹 3세는 투쟁의 중재자를 자처하며 군대와 관료제를 통한 권위주의적 개인 독재를 수립했다.
파시즘도 보나파르트주의의 변종이다. 1차 대전 직후 이탈리아 지배층이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거센 도전에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솔리니라는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로마 진군’을 통해 권력을 장악했다. 이 새로운 파시즘의 이념과 체제는 고대 로마 독재관 이름을 따 카이사르주의라고도 불리는데 보나파르트주의와 거의 같은 말이다. 둘 다 낡은 것은 죽고 새로운 것은 태어나지 않은 헤게모니 위기의 결과이며, 새로운 헤게모니를 생성하려는 과도기적 권력 형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폴레옹 3세도, 무솔리니도 안정된 헤게모니를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 물론 두 보나파르트주의 체제가 20년 남짓 유지됐으니 내구성은 있었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두 체제에서 민주주의와 자유의 심각한 퇴보가 있었고 두 체제의 붕괴와 함께 참혹한 내전이 일어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두 체제를 선택한 대가는 오롯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민들이 치러야 했다.
최근 우리도 보나파르트주의 같은 것이 출몰할 만한 상황을 겪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옛것은 가고 새것은 오지 않은 교착상태에서 보나파르트주의의 시도도 저지된 것이다. 실패한 계엄이 그것이다. 이는 그럴 만한 보나파르트적 지도자도 없었거니와, 민주주의적 견제력이 훌륭하게 작동한 결과였다. 이제 민주주의는 애초에 보나파르트주의를 배양했던 교착상태를 돌파할 추진력까지 보여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적과 동지에 대한 평면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적과 동지 사이에는 광범위한 회색지대가 있고 반대 세력이 모두 적대 세력은 아니다. 또한 개혁이 당장의 필요가 아니라 역사적 요구이며 소수의 이해가 아니라 다수의 공공선임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헤게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