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부장검사출신변호사 김민석 국무총리가 25일 한국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두고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의미 있는 진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공개된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프로젝트가 완전히 중단되거나 공식적으로 보류된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많은 인력이 미국에 신규 입국하거나 재입국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한·미 양국은 이달 초 미국 조지아주 한국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단속으로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사건 이후 비자 제도 개정을 위해 협의 중이다. 김 총리는 “그들의 안전에 대한 확실한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당사자와 가족들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다시 미국에 들어가기를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미국과 진행 중인 관세협상을 두고는 “미국과 투자를 약속한 3500억달러가 한국 외화보유액의 70% 이상에 해당하며,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협정이 없으면 한국 경제는 심각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김 총리는 “한국에 중대한 재정 부담을 주는 합의안은 국회 승인이 필요할 수 있다”며 “협상이 내년으로 넘어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일본의 5500억달러 투자 약속과 유사한 미국의 요구에 대해 협상팀뿐 아니라 국민 사이에서도 수용하기 어렵다는 기류가 있다”고 전했다.
국무총리실은 이날 인터뷰 관련 설명자료를 내놓고 “김 총리는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 근로자들과 그 가족들이 미국 입국을 굉장히 꺼리는 상황임을 설명하는 것일 뿐 투자를 유보한다는 의미의 발언을 한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 조지아주에서 진행 중인 투자와 관련된 것이고 한·미 간 논의되고 있는 3500억달러 투자와는 무관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김 총리는 또한 한국이 국방력 강화를 위해 향후 10년간 국방비 지출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5%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3.5%라는 수치를 언급한 것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한국의 국방비 지출은 GDP 대비 2.32% 수준이다.
김 총리는 다음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회담할 가능성을 묻는 말에 “예상치 못한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으므로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지난 8월8일 유고운씨(45)는 의사로부터 “더는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2022년 4월 난소암 3기 진단을 받고 3년여만이었다. 유씨는 세 아들과 남편에게 남길 말과 함께 ‘최후 변론’을 준비했다.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위한 재판에 쓰일 진술이다.
유씨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소송을 시작했다. 지난 23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병동에서 유씨를 만나 산재 소송에 뛰어든 이유를 물었다. 어린이방송 PD로 살아온 지난 시간을 말하는 내내 유씨의 야윈 얼굴로 미소가 번졌다.
유씨는 언론광고학과를 졸업한 뒤 처음 방송 업계에 발을 들였다. 뚜렷한 목표도 알 만한 인맥도 없어 무작정 무대 감독(FD) 아르바이트를 지원했다. EBS 어린이 프로그램 <방귀대장 뿡뿡이>에서 소품을 제작하는 일을 맡았다. 화장지를 오려 사과 모양을 만들고 색종이를 접는 “대단하지 않은 일”이 유씨는 재밌었다. 밤새 100개가 넘는 소품을 만드느라 잠을 못 자도 마냥 좋았다. ‘이걸로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겠지’ 생각하면 설렜다. “인생의 독이자 행복이었던” PD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2005년 유씨는 케이블방송사 대교어린이TV에 입사했다. 밥먹듯이 혼나도 일은 “날개 달린듯 점점 재밌어”졌다. 사람들과 함께 방송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제작진 소개 자막에 적힌 자신의 이름이 신기했다. 작은 방송사에서 16년간 일하는 동안 유씨는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총 16억원의 정부지원금을 받았고 10개의 상을 받았다. 아이 셋을 낳는 동안 육아휴직 한 번 쓰지 못할 정도로 일이 많았지만 “PD는 그래야 한다고 배웠”기에 감당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 행운”이라고 유씨는 생각했다.
2021년 11월 유씨는 암 수치(종양표지자)가 정상 기준치보다 3배 높다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다. 당시 유씨는 프로그램 2개를 동시에 맡고 있었다. 회사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일은 줄지 않았다. 업무를 조율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책임감을 보여달라”는 식의 말만 돌아왔다. 건강검진 때 127이었던 암 수치는 5개월이 지난 2022년 4월 1171로 폭증했다. 유씨는 팀장의 허락을 받고서야 방송 녹화를 취소하고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난소암 3기를 진단했다.
지난해 회사는 구조조정을 하며 유씨에게 사직을 권고했다. 그즈음 암이 재발했다. 그해 7월 회사를 떠나며 유씨는 전 사원에게 메일을 남겼다. “최선을 다해 몸담았던 회사를 애정을 가지고 떠날 수 있도록 제가 얼마나 많은 시간 일했는지만 기억해주십시오.” 회사는 유씨의 마지막 부탁을 듣지 않았다. 유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서를 제출하자 회사는 장시간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회사에 온몸을 바친 유씨는 회사에 맞서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판례와 논문을 찾기 시작했다.
유씨는 편집 프로그램 이용 기록 등을 추적해 자신의 노동 시간을 직접 계산했다. 건강검진 결과를 받은 뒤부터 암 진단을 받기까지 25주 동안 초과 노동 시간만 600시간이었다. 난소암은 출산 경험이 적고 유전 병력이 있으면 발병률이 높다고 했다. 유씨는 세 번의 출산 경험이 있고 암 관련 가족력도 없으니 수년 간 반복해 온 야간 노동과 일상적 과로가 암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했다. 실제 지난해 7월 근로복지공단은 야간교대근무를 하다 유방암을 진단받은 간호사의 사례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 그러나 공단은 지난 4월 “장시간 노동이 난소암에 영향을 미쳤다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유씨의 산재를 불승인했다.
유씨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행정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유씨는 재판이 시작되기까지 1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최후 진술 영상을 미리 찍어뒀다. 남편에게는 육아를 위한 지침서를, 세 아들에겐 “행복한 사람이 되어라”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남겨뒀다. 늘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어린이에게 유익한 방송”을 남기려 했던 유씨는 마지막으로 다른 것을 남기려 한다. 유씨가 말했다. “전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어요. 좋아하는 일을 했고 이렇게 싸워볼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이건 너무 큰 꿈이지만··· 저로 인해 PD들의 환경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건 바라요.” 사랑했던 일터에 유익한 선례로 남기 위해 유씨는 이번에도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