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성범죄전문변호사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설정하기 위한 공론화 절차가 오는 19일부터 시작된다. 국민 10명 중 6명은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60% 줄이자는 의견에 찬성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환경부는 19일부터 다음달 14일까지 7차례에 걸쳐 대국민 공개 논의 토론회를 열고 국민 여론을 진행한다고 18일 밝혔다. 토론회는 총괄토론을 시작으로 전력·산업·수송·건물·농축산 및 흡수원 등 5개 부문별 토론(9월23일~10월2일), 종합토론(10월14일) 으로 진행한다. 정부는 다음달 14일 마지막 7차 토론회에서 정부안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부는지난 8일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2018년 배출량 대비 감축 목표로 ‘40% 중후반’ ‘53%’ ‘61%’ ‘67%’ 등 4개 감축안을 제시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의 기온 상승폭을을 1.5도 이하로 제한하자는 ‘파리기후협약’의 약속에 따라 각국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주기적으로 제출하고 있다. 올해는 2035년 온실가스 감축안을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해야 하는 시점이다.
기후환경단체 기후솔루션이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18일부터 2주간 국민 2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1.7%가 온실가스 60% 감축안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우리나라가 온실가스를 국제 권고안인 2035년까지 60%로 감축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동의하시나요’는 질문에 17.2%는 ‘매우 동의’, 44.6%가 ‘동의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보통’은 28.1%, 동의하지 않는 편은 8.2%,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는 2.1%에 그쳤다.
60% 감축안 동의 이유로는 ‘이미 폭염, 홍수, 산불 등이 심각해지고 있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라는 답변이 50.7%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미래 세대를 위해 지금 세대가 책임지고 온실가스를 줄여야’(42.6%), ‘기후위기 대응이 늦어질수록 비용과 사회적 피해가 커지기 때문에’(40.0%) 순이었다.
기후변화 체감 정도를 묻는 질문에는 몸소 느끼고 있다는 응답이 89.2%(확실히 체감 33.3%·대체로 체감 55.9%)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올여름 폭염과 폭우, 돌발 가뭄 등 이상 기후 현상이 반복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1796년 음력 7월21일자 <노상추 일기>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 있다. 노상추가 거쳤던 삭주부사 자리에 음관(蔭官)인 온양군수 변위진이 제수되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작은 군현이나 변방에선 과거 합격 없이 조상 음덕으로 관직을 받는 음관이 배치되는 사례가 간혹 있지만, 당상관인 부사 자리에 음관을 발탁한 일은 이례적이었다. 게다가 노상추의 불쾌함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변위진은 병마절도사 백동준의 후실 처남으로, 무과 합격 없이 병마절도사 후광에 힘입어 ‘선전관에 천거’(이를 줄여 ‘선천’이라고 불렀다)된 이른바 남항천(南行薦)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선천은 왕을 시위하는 선전관을 미리 천거해 두는 제도인데, 무과는 워낙 많은 인원을 선발하다 보니 고위직 무관이 되려면 반드시 선천을 거쳐야 했다. 그런데 변위진은 가문 후광으로 천거된 남항천 출신이어서, 쉰이 넘도록 관직을 얻지 못하다가 음관 부장으로 겨우 6품에 올라 온양군수가 되었다. 이처럼 서출인 데다 남항천 출신인 무관이 노상추가 거쳤던 삭주부사에 제수됐으니, 양반 신분으로 무과와 선천을 모두 통과했던 노상추로서는 불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자신이 수년간 변방 근무도 마다치 않고 부단히 노력해서 얻은 자리를 변위진은 너무 쉽게 차지한 듯했다.
여기에 이유는 있었다. 변위진이 수령으로 근무했던 온양에는 왕의 행궁이 있었는데, 1760년 영조와 함께 사도세자가 이 행궁에 잠시 머문 적이 있었다. 당시 세자는 궁 옆에서 활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곳은 나무 그늘 하나 없어 활 쏘는 데 방해될 정도로 햇볕이 강했다. 이 때문에 사도세자는 느티나무 세 그루를 구해 ‘품(品)’자 모양으로 심도록 하고, 친히 감독까지 했다. 36년이 지나, 이 세 그루 나무는 여섯 개 가지를 만들어 넓은 그늘을 제공할 정도로 성장했다.
변위진은 온양 수령이 된 후, 충청도 관찰사에게 청해 이 느티나무 근처에 단을 쌓아 사도세자의 유적으로 표시하자는 제안을 했다. 충청도 관찰사 역시 이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고 돌로 3층의 단을 쌓게 했다. 그러나 단이 완성되기 전, 변위진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관찰사는 파직되었고, 그 공은 다음 관찰사에게 넘어갔다. 새로 제수된 충청도 관찰사는 비장이었던 윤갑에게 이 공사를 감독하게 했고, 공사가 끝난 뒤 그 전말을 왕에게 보고했다. 단을 만든 공이 변위진과 윤갑에게 돌아간 이유였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이 사안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단을 쌓은 공사를 마친 뒤 비석을 세워 이 일의 전말을 기록하게 했는데, 왕이 직접 비석 뒷면에 들어갈 내용을 작성하고 그 앞면에는 ‘영괴대(靈槐臺)’라는 이름을 지어 새기게 했다. 그리고 왕의 효심을 제대로 자극했던 변위진은 무과 출신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당상관 자리에 승진 배치했고, 변위진의 자리에는 비장에 불과한 윤갑을 제수했다. 운도 좋았고, 시류에 따라 정조의 효심을 잘 이용한 결과이기도 했다. 물론 이 인사에서 이들을 고을 수령을 모셔야 하는 삭주부와 온양군 백성들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힘들게 올랐던 자리가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나 쉽게 주어지는 듯한 경험을 하곤 한다. 인사권자의 마음을 저격하는 방법이 반드시 능력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은 차라리 상식에 가깝다. 출세를 위해 윗사람의 코드에 맞추어야 한다는 충고는 현대 사회에서 더 유효한 듯하다. 그러나 이런 인사가 상식이 되면, 그 공동체 구성원들은 자신의 능력을 주어진 일이 아니라 인사권자와 코드를 맞추는 데 쏟기 마련이다. 어떠한 공동체도 인사권을 가진 최고 권력자 수준을 넘지 못하는 이유이다. 회사에서 이런 경우가 만연하면 회사가 망하고, 나라에서 이런 일이 만연하면 나라가 무너진다. 먼 역사를 거스를 필요 없이, 지난 정권에서 일어난 일만으로도 우리는 이 명제에 대한 입증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