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내구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누구보다 먼저 계엄 해제에 앞장섰다”며 불법계엄 관련 의혹 전반을 수사하는 내란 특검 조사에 응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특검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한 국민의힘 기조에 발맞추는 행보로 풀이된다.
내란 특검이 참고인 조사에 두 차례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전 대표에 대한 ‘기소 전 증인신문’을 법원에 청구한 지난 10일부터 한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당대표로서 누구보다 먼저 여러 의원, 당협위원장, 당직자들과 함께 위헌 위법한 계엄 저지에 앞장섰다”며 자신에 대한 조사가 필요 없다는 주장을 이어갔다.
한 전 대표는 “자세한 경위에 관해 지난 2월에 발간한 책, 여러 언론 인터뷰, 다큐멘터리 문답 등으로 제가 알고 있는 전부를 이미 상세히 밝혔다”며 “이미 밝힌 그 이상의 내용에 대해 말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12일 “오늘 특검이 누구보다 앞장서 계엄을 저지했던 저를 강제구인하겠다고 언론에 밝혔다”며 “할 테면 하라”고 했다.
한 전 대표는 “뜬금없이 특검과 편먹고 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민주당에 묻는다”며 화살을 민주당으로 돌렸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해 민주당 지도부일 때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가능성을 사전에 거론한 것을 두고 지난 13일 “구체적 정보를 알고 있었던 것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한 전 대표는 14일에도 “민주당이 근거 있는 확신을 갖게 된 어떤 구체적인 계엄 정보를 갖고 있었는지 국민들께 공개하라”며 “민주당이 확보한 확신의 근거가 공개됐다면 계엄은 실행되지 못했을 것인데 민주당은 그러지 않았다. 왜 그러지 않았는지 국민들께 말해야 한다”고 했다.
한 전 대표는 특검을 향해 “계엄에 대해 제게는 더 들을 얘기가 없지만, 민주당 사람들에게는 들어야 할 얘기가 많다”고 민주당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한 전 대표가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을 향해 “계엄 해제 정족수가 찼음에도 왜 바로 (해제) 표결 진행을 안 했나”고 문제를 제기하자 우 의장이 이날 페이스북에 반박하고 한 전 대표가 재반박하는 공방도 있었다.
이러한 한 전 대표 입장은 특검 수사에 대해 야당 탄압이라며 반발하는 국민의힘 태도와 비슷하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찬성파(찬탄파)인 한 전 대표가 탄핵 반대파(반탄파) 위주의 지도부가 들어선 국민의힘과 특검 수사 국면에서 발을 맞추며 대여 투쟁에 우선 초점을 맞추는 양상으로 평가된다. 불법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한 한 전 대표가 불법계엄 진상을 규명하려는 특검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데에도 유사한 정치적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의힘을 내란 정당으로 부르며 정당 해산을 거론하는 민주당이 특검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조사에 응할 경우, 자신에게 덧씌워진 ‘배신자 프레임’이 강화돼 향후 재기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친한동훈계 조경태 의원은 지난 전당대회 당대표 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특검의 참고인 조사에 응했다가 배신자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특검이 불법계엄 선포 당시 추경호 원내대표(현 국민의힘 의원)의 계엄 해제 표결 방해 혐의에 대해 최근 국민의힘 원내대표실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당이 단일대오로 맞선 분위기도 고려됐을 수 있다.
참고인 신분이라도 조사를 받고자 특검에 출석하는 모습 자체가 부정적 이미지로 비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으로도 보인다. 검찰 특수통 출신인 한 전 대표는 2016~2017년 국정농단 특검에서 활동하는 등 특검 수사 생리를 잘 안다. 그는 자신을 겨냥한 특검 수사를 “정치적 선동과 무능”으로 규정하며 “언론을 이용한 압박에 대해 우려한다”고 밝혔다.
12·3 불법계엄 관련 내란·외환 의혹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가 수사기간을 연장했다.
박지영 특검보는 11일 브리핑에서 “내란 특검법 10조3항에 따라 주어진 수사기간 90일로부터 30일 연장하기로 결정했다”며 “사유를 국회와 대통령에게 서면으로 보고했다”고 밝혔다. 박 특검보는 “주요 수사 대상인 외환 관련 부분도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국회 계엄 해제 의결 방해도 한창 진행 중”이라며 “아직 압수물 분석이 끝나지 않은 사건도 있어 기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6월18일 수사를 개시한 내란 특검의 1차 수사기간(90일)은 오는 15일까지다. 이날 기간 연장으로 수사기간은 내달 15일까지 늘어난다. 특검은 90일 내 수사를 완료하지 못하거나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30일씩 두 차례에 걸쳐 수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특검법 개정을 통해 3회까지 수사기간 연장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나, 특검은 현행법이 보장하는 기간 내에 수사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다.
특검은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이 연루된 국회 계엄 해제 의결 방해 의혹,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과 관련한 잔여 의혹, 평양 무인기 작전을 비롯한 외환 의혹 수사에 주력할 방침이다.
특검은 계엄 해제 의결 방해 의혹과 관련해 전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에 이어 이날 같은 당 서범수·김희정·김태호 의원에 대한 기소 전 증인신문을 서울남부지법에 청구했다. 기소 전 증인신문은 증언이 필요한 참고인이 조사 요청에 불응할 경우 법원의 구인영장을 받아 검사가 법정에서 신문하는 제도다.
이 밖에도 특검은 지난해 3월 ‘비상대권’ 등이 언급된 것으로 알려진 안가 회동 상황 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박 특검보는 “윤 전 대통령이 도대체 비상계엄이란 걸 언제부터 생각했느냐도 진상 규명과 관련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