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가입 “우리 기업들은 일본의 소재, 부품, 장비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수입처를 다변화하거나 국산화의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2019년 7월15일 문재인 전 대통령)
2019년 일본이 한국에 대한 소재·부품·장비 수출규제를 단행하자 한국은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다”면서 ‘자립’을 외쳤다. 그후 6년이 흘렀다. 제조장비의 ‘두뇌’ 역할을 하는 컴퓨터 수치제어기(CNC)의 국산화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뒀다. 일본 수출규제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K산업의 자생력을 키운 사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8일 정부의 CNC 국산화 과제를 수행하는 기업인 ㈜KCNC가 ‘기술 국산화’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CNC는 제조장비의 모든 기능을 자동 제어하는 전자모듈로, ‘기계를 만드는 기계’인 ‘공작기계’에 부착되어 사용된다. 컴퓨터·스마트폰의 ‘중앙처리장치(CPU)’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CNC는 현재 한국 기계·장비 가공의 절반을 책임지고 있지만 한국산은 극히 부족한 실정이다. 외국산 CNC 의존도는 95%가 넘고, 나머지 5%의 제품들도 핵심 기술은 외국에 의존한 것들이다. 세계 CNC 시장의 80%를 독일·일본·미국이 점유하고 있다.
정부가 CNC 국산화에 착수한 것은 2019년 일본의 수출통제 때문이었다. 2019년 7월 일본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3대 핵심 소재(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불화폴리이미드)에 대한 수출규제를 시작했다. 이어 8월에는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해 수출 절차를 대폭 강화했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들에 내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였다.
당시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한편 일본산 의존도가 높았던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자립을 추진해왔다. CNC 국산화 프로젝트 역시 그 일환이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당시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에는 CNC가 포함돼 있지 않았으나 ‘다음 차례는 CNC’라는 말이 나왔고, 조사해보니 한국 제조장비 CNC의 80%가 일본 제품이었다. 일본이 CNC까지 수출규제를 할 경우 우리 제조업 생산라인 전반이 중단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있었다”면서 “일본의 수출규제를 기점으로 국산화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CNC 국산화 프로젝트’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듬해인 2020년부터 본격 시작됐다. CNC는 제어기 본체, 모터 등 구동부, 인터페이스 등을 동시에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개별 기업 차원의 개발엔 한계가 있었다. 정부는 한국기계연구원을 비롯해 20여개의 관련 기업·연구소를 이 프로젝트에 참여시켰고 이들 기관이 합작해 ㈜KCNC가 설립됐다.
이후 5년의 노력 끝에 결실을 거뒀다. 지난달 현장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평가 결과, 가공오차와 표면품질 등 주요 성능지표에서 ㈜KCNC의 CNC가 선진 CNC와 유사한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조작 인터페이스의 편의성과 제공 기능의 다양성 측면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다음 단계는 ‘상용화’를 위한 실증 작업이다. 실증을 통해 고속·반복 작업과 다양한 재료, 공구를 활용한 가공 등을 테스트하게 된다. 장비의 내구성과 실제 환경에서의 신뢰성 검증도 이뤄진다.
이번 실증 과정엔 CNC 구매 수요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4대 기업 ‘DN솔루션즈’ ‘위아공작기계’ ‘화천기공’ ‘스맥’이 모두 참여할 예정이다. 이 중 3곳은 실증 결과 성공적일 경우 구매계약을 체결키로 하는‘구매의향서’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는 실증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내년부터 본격 판매가 이뤄지고 2032년까지 국내 시장점유율 30% 달성도 내다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만약 CNC 내수·수출 물량의 30% 국산 대체가 가능해지면 그 경제적 가치는 2000억원에 이른다. 국내 업체인 ㈜KCNC가 상품 개발과 판매 등을 담당하기 때문에 신속한 AS, 맞춤형 제품 개발도 가능하다.
산업부 관계자는 “CNC는 제조장비의 두뇌이자 인공지능(AI) 팩토리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한 핵심 요소로, 첨단 CNC 확보를 통해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