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폰테크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만나 관세 문제를 논의했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16일(현지시간)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에서 약 30분간 회담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과 일본 측 무역협상 대표인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도 함께했다.
이시바 총리는 취재진에게 “우리는 최종 합의 가능성을 계속 검토해왔지만 여전히 엇갈리는 의견이 있었다”고 밝혔다.
교섭에 진전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교섭은 마지막 순간까지 알 수 없다. 서로의 국익이 실현되느냐의 문제이고 예를 들어 우리에게 자동차는 정말 큰 국익이다”라며 “국익을 지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거듭하겠다”고 답했다. 합의 시점에 관해선 “‘언제까지 하겠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회담 당시 주일미군의 주둔 경비 부담에 관해서는 논의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같은 날 영국과 무역협정에 최종 서명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과는 어땠냐’는 취재진 질문에 “좋았다”고 짧게 답했다. 그는 이스라엘·이란 충돌 등 중동 문제로 인해 G7 일정 도중 급하게 미국으로 돌아갔다.
앞서 양국은 세 차례의 정상 간 통화와 여섯 차례의 장관급 대면 협상을 통해 관세 문제를 논의했다. 일본 측은 미국이 부과한 철강·알루미늄 품목 관세와 자동차 및 자동차 부품 관세 등 정책을 다시 고려해달라고 미국 측에 강력하게 요청할 계획이었다.
앞서 이시바 총리는 미국이 일본 측 요구사항을 들어줄 때까지 천천히 협상을 진행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지난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기 전에 (양측 무역협상에) 진전이 있으면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일본과 미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합의를 이루는 것”이라며 “빠른 합의를 위해 일본의 이익을 희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 민간 싱크탱크 노무라종합연구소의 키우치 토에이 경제 연구원은 “자동차 관세 완전 철폐를 요구하는 일본과 상호관세만 협의하기를 요구하는 미국의 견해는 애초 엇갈렸다”며 “이스라엘·이란 문제가 긴박하게 흘러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 처지에서도 대일 협의를 서두를 필요성이 낮다”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회색 바위여도 아침 햇살이 비쳐 들면 황금빛을 띤다. 그러다 한낮의 작열하는 광선이 내리쬐면 하얗게 반짝거리고, 저녁 되어 노을빛이 비쳐 들면 자줏빛으로 물들여진다. 이를 두고 연암 박지원은 색 속에 빛이 있어 그리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암이 든 사례는 까마귀였다. 다들 까마귀는 당연히 까맣다고 여기지만, 연암이 보니 어떤 때는 뽀얀 황금빛이 감돌았고, 진한 녹색으로 반짝이기도 하며, 해가 비추면 자줏빛이 발산되어 눈앞에 어른거리다가 비췻빛으로 바뀐다고 한다.
연암은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사정이 이러하니 “내가 그 새를 푸른 까마귀라고 부른다 해도 될 것이고, 붉은 까마귀라고 불러도 가능할 것이다. 그 새에는 본래 고정된 빛깔이 없거늘, 내가 눈으로 먼저 그 빛깔을 정한 것이다. 어찌 눈으로만 정했겠는가? 보지도 않고서 먼저 그 마음으로 정한 것”(<능양시집서>)이라고 통찰했다.
물론 과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연암의 통찰은 부적합하다. 까마귀가 검은 것은 확정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검은색이 햇빛 등과 어울려 그때그때 빚어내는 금색, 진녹색, 자주색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그렇기에 이를 통해 경직된 사고를, 넓지 못한 식견을 비판하려 한 연암의 의도는 결코 부적합하지 않다. 아니, 작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연암의 문제제기는 한층 강력하고 유효하다.
자신이 믿어온 것, 자기에게 익숙한 것, 본인에게 편리하고 이익인 것에 길들여진 채로 분명한 사실을 외면하고 때로는 부인하며 날조하는 풍조가 날로 심화하고 있기에 그러하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데서 사실 그대로 보는 데로 나아감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훈련해야 비로소 그런 눈을 갖출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 기반도 갖춰야 한다.
명심할 점은 이러한 교육은 좌우 같은 이념이나 여야 같은 진영 논리와 무관하다는 사실이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 이념이나 진영 논리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또한 이러한 교육은 디지털 대전환 시대가 요구하는 융합 역량을 갖추는 데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보고 싶은 대로, 믿고 싶은 대로, 아는 대로 보면서 무슨 창의적 융합을 사유하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