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할인코드 ‘킹받다’는 말은 왕과는 아무 상관 없는 좀 희한한 조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던 영국도 이젠 제 섬으로 돌아갔고, 일본이 ‘공허한 중심’(롤랑 바르트)인 천황제를 아직 고수하지만 왕들은 현실 권력을 모두 궁으로 거둬들였다. 이런 차에 대체 무슨 영문인가.
민주주의의 표본인 미국에서 ‘노 킹스(No Kings·왕은 없다)’ 구호를 거리의 시위대가 외친다고 한다.
우리 대한국민은 전근대적인 왕정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나라 이름을 받들고, ‘민주공화제’임을 합의해 오늘날 ‘민주주의’ 체제로 역사의 물줄기를 틀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천명했다. 이로써 역사는 일통하게 이어지고, 14명의 대통령이 배출됐다.
그랬던 우리나라에서 20대 대선 때 손바닥에 ‘왕(王)’자를 쓴 이가 뽑히더니, 실제로 그는 킹처럼 행동하더니, 그 왕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제 발등만 찧고 말았다. 이에 ‘킹받을 대로 킹받은’ 주권자들이 일어나 내란을 조기에 진압한 뒤 선거로 깔끔하게 응징했다. 그젠 생뚱맞게 ‘국모’란 단어가 튀어나와 실소를 자아냈지만 이젠 법의 심판만이 착착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보라, 세계도 놀라는 민주주의의 회복 탄력성.
한자는 세상을 복사하듯 그대로 사생(寫生)하는 문자다. 단순에서 복잡한 획으로 사물과 사태, 개념과 추상을 요약해 표현한다. 옥편은 이런 방대한 한자를 부수(部首)로 분류하는데, 한 일(一)부터 시작해서 ‘위아래로 통할 곤(丨)’으로 이어진다. 그다음은 ‘점 주(丶)’인데 이 부수에 속한 세 한자가 매우 매섭다. 붉을 단(丹), 알 환(丸), 주인 주(主). 이들은 계엄, 탄핵, 파면, 선거의 배후를 관통하듯 그대로 주르륵 엮어지지 않겠는가.
주권자들은 한 조각 붉은 마음, 이른바 단심(丹心)을 지녔다. 어처구니없는 계엄이 발동됐을 때, 총알같이 뛰어나가 저지한 이도 바로 이런 마음들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탄환(彈丸) 같은 한 표를 통해 우리 공화국의 주인(主人)이 바로 자신들임을 확인하였다. 특히 왕(王)자 위에 무심한 점 하나 툭, 앉아 있는 주(主)를 오래 바라본다. 민주주의(民主主義) 만세. 우리나라 만만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캐나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도중 급거 귀국했다. 이스라엘·이란 간 분쟁이 심각해진 데 따른 것이다. 중동발 돌발변수에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도 무산됐다. 당초 미국발 관세갈등과 우크라이나·중동에서의 ‘두 개의 전쟁’ 돌파구를 모색하는 G7 정상회의를 기대했지만, 소득 없이 막을 내리면서 미국과 동맹국 간 다자외교는 더욱 난도 높은 시험대에 서게 됐다.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가 풀어야 할 과제도 한층 복잡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조기 귀국과 G7의 무력함은 불안해진 세계와 시련에 처한 국제질서의 상징적 장면이라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귀국에 앞서 SNS에서 “이란은 내가 서명하라고 한 합의에 서명했어야 했다”면서 “모두 즉시 테헤란을 떠나라”고 경고했다. 당초 이스라엘·이란 양측에 자제를 촉구하는 내용의 초안에 미국이 서명을 거부하면서 무산될 뻔한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은 막판에 이란의 확전 자제를 촉구하는 것으로 채택됐다.
G7에서는 미국과 동맹국 간 핵심 이슈인 관세와 대러시아 제재를 놓고 이견만 노정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캐나다·영국·일본·유럽연합(EU) 정상들과 양자회담을 했지만 마이웨이로 일관했다. EU의 새로운 러시아 제재 방안에 미국은 부정적 입장을 보였고, 각국 정상들의 관심사인 관세 계획 철회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다자주의를 불신하고 중국·러시아 정상과의 담판을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마찰 우려를 정상들은 재삼 확인했을 것이다.
한국으로서도 “미국 측으로부터 양해를 구하는 연락이 왔다”(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곤 하지만 한·미 정상회담이 무산된 아쉬움이 크다. 당초 이 대통령은 17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최대 현안인 통상 문제 실마리를 풀 계획이었다. 이 대통령은 “최소 다른 국가에 비해 불리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 과제”라고 했지만, 담판은 일러야 오는 24~25일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됐다. 다만 한국이 비상계엄 공백을 딛고 반년 만에 정상외교 무대에 성공적으로 복귀했음을 알린 것은 평가할 만하다. 이 대통령은 16일 한·남아공, 한·호주 정상회담에 이어 17일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한·일 정상회담을 한다. 국제질서 격변 속에 한·일관계의 새 방향을 보여줄 회담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