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폰폰테크 “배심원들은 여러분을 일반 방청객으로 압니다. 정식 배심원을 해보고 싶었던 분도 계시고, 재판 전반에 관심 있던 분도 계실 텐데 목적을 달성하시길 바랍니다.”
2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가장 큰 법정인 417호에 방청객 20명이 촘촘히 들어섰다. 이들의 손에는 두꺼운 종이 서류와 펜이 들려 있었다. 피고인석과 마주 보는 자리에는 배심원 8명이 앉아 있었다. 방청석에 앉은 이들도 배심원단과 비슷하게 사뭇 엄숙한 표정을 하고 재판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이들은 재판을 참관하면서도 판결에는 관여하지 않는 비공식 배심원, 이른바 ‘그림자 배심원’이다.
‘그림자 배심’은 일반 시민들이 국민참여재판을 방청한 뒤 모의 평의·평결에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다. 국민참여재판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2010년 도입됐다. 그림자 배심원은 재판 과정을 모두 참관한 후 유·무죄 및 양형 의견을 낼 수 있다. 다만 정식 배심원과 달리 의견이 재판 결과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오세용)는 이날 보이스피싱 범행으로 기소된 A씨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을 열었다.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 측이 요청하면 재판부가 진행 여부를 결정한다. A씨 측 변호인은 “(보이스피싱은) 우리 주변에서 많이 발생하는 범죄다. 국민 눈높이에서 범죄라고 판단하기 어렵다면 형사처벌을 받는 게 정당하겠느냐”며 국민참여재판 신청 취지를 설명했다.
이날 재판의 쟁점은 A씨가 자신의 행위가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것을 인식하고 조직원들과 범행을 공모했는지였다. 검찰은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주장한 반면, A씨 측은 “대출 신청 과정이라는 업체 말만 따랐다”고 맞섰다. 검사와 변호인은 연단에 서서 배심원단과 눈을 맞춰가며 설득에 나섰다. ‘미필적 고의’ ‘증거조사’ 등 법률 용어를 상냥한 어투로 풀어 설명했고, 검찰은 보이스피싱 관련 뉴스 영상을 재생하기도 했다. 그림자 배심원은 방청석에서 자료를 뒤적거리고 메모하며 재판에 집중했다.
법학전문대학원 준비생으로서 그림자 배심에 참여한 문인교씨(31)는 “어려운 개념이나 단어에 대해 일반적인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었다”며 “보이스피싱 범죄처럼 누군가의 인생에 매우 큰 영항을 주는 사건들은 국민의 법 감정을 (판결에) 잘 녹여야 하기 때문에 국민참여재판 제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은 올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국민참여재판이었다. 법원행정처 통계에 따르면,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 도입 후 2013년 345건으로 가장 많이 열렸으나, 코로나19 이후 급감해 2023년에는 95건 열렸다.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을 불허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14.8%에서 31%로 높아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 보장 차원에서 국민참여재판 확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다만 재판 비효율성, 감정 호소 위주 재판 진행, 비교적 높은 무죄율 등 보완책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참여재판의 1심 무죄 판결 비율은 2012년 이후 꾸준히 올라 2022년 31.5%로, 일반 형사사건 1심 재판(3.1%)보다 10배 이상 높았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에서 화재가 나던 순간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서울남부지검 ‘지하철 5호선 방화사건’ 전담수사팀(팀장 손상희 부장검사)은 지난달 31일 일어난 지하철 5호선 방화 순간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25일 공개했다.
영상을 보면 흰색 모자를 눌러쓴 원모씨(67)는 지난달 31일 오전8시42분쯤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 방향으로 달리던 열차 4번째 칸에서 노란빛의 액체가 담긴 페트병을 가방에서 꺼냈다. 원씨는 망설임 없이 두 차례에 걸쳐 바닥에 휘발유를 뿌렸다. 이를 본 승객들이 소리를 지르며 옆 칸으로 도망쳤고, 승객 2명이 휘발유에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했다. 이중 한 명은 임산부였지만 원씨는 아랑곳 않고 라이터로 휘발유에 불을 붙였다. 신발이 벗겨진 임산부는 다급하게 옆칸으로 도망쳤다. 2~3초만 늦었어도 몸에 불이 붙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원씨가 붙인 불은 순식간에 열차 내 바닥으로 번졌다. 같은 시간 화재가 발생한 옆 칸에 타고 있던 승객들도 우르르 몰려드는 인파를 보고 함께 달아나기 시작했다. 원씨가 불을 지른 지 채 1분이 안돼 열차 내부는 새카만 연기로 가득 찼다. 승객들은 해당 열차의 끝칸으로 몰려 가 손 등을 이용해 입과 코를 가렸다.
화재 당시 승객 약 400명은 직접 열차 출입문을 열고 선로를 따라 긴급 대피했다. 승객들과 기관사의 빠른 대처로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영상엔 큰 참사가 날 뻔한 모습이 담겼다.
검찰은 이날 원씨를 살인미수와 현존전차방화치상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원씨가 범행을 통해 자신을 포함한 승객 160명을 살해하려 했다고 보고 살인미수 혐의를 추가했다.
검찰 수사결과 원씨는 지난달 14일 아내와의 이혼 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 조사 과정에서 원씨는 “불에 타 죽을 마음으로 범행했다”며 “지하철에 방화할 경우 사회적으로 큰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검찰 수사 결과 원씨는 휘발유를 미리 사두고 범행 전날 시내 주요 역을 배회하며 범행 기회를 물색하는 등 사전에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