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테크 vs 중고판매 나라마다 사정은 조금씩 달랐지만 아시아의 핵발전은 세계 핵산업의 기술적 발전과 각국의 정치 상황이 독특하게 결합하는 양상을 띠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과 영국에서 첫 상업용 핵발전이 시작된 이래 자국에 필요한 전기와 핵무기 원료 생산을 위해 핵발전을 확대한 프랑스, 캐나다, 옛 소련 등이 1세대 핵발전 국가들이다. 이들은 1970년대가 되자 일본과 한국, 필리핀, 인도 등에 핵발전 수출을 시도했다. 공통적으로 발전주의 국가 모델에 권위주의 정부를 가진 나라들이었다. 급속한 산업화를 거치고 있었고 저렴하고 안정적인 전기 공급이 요구되었으며 대체로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핵발전은 이런 아시아의 2세대 핵발전 국가들에 산업화와 민주주의의 한 기둥이 되었다.
외견상으로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도입됐지만 사실 노골적인 군부독재 또는 미국의 후견 국가 상태였다. 이는 핵발전 안착에 필수적인 조건이기도 했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는 행동은 그 자체로 불온시되었다. 한국에서도 “전기 만드는 공장”을 나라에서 짓는다고 하니 부산 옆 고리 마을의 주민들은 속절없이 쫓겨나야 했다. 이렇게 핵발전은 권위주의 정부의 에너지 체제로써 자리를 틀고 앉았고 바로 그런 이유로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반핵운동은 반독재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나라가 필리핀이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독재자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대통령은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을 줄인다는 이유로 1973년부터 바탄 반도에 핵발전소 건설을 발표했다. 하지만 필리핀은 화산과 지진이 많은 나라다. 핵발전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1981년부터 반핵운동이 조직되었고 1983년에는 이는 반미·반핵무기 운동과 결합하며 확산하였다. 1985년 6월 바탄에서 3만명이 넘게 참여한 사흘간의 민중파업은 운동의 정점이었다. 이 민중파업의 에너지는 다음 해 피플파워 운동으로 이어졌다. 결국 1986년 2월 마르코스 정권은 무너졌고 곧이어 전해진 옛 소련의 체르노빌 사고는 거의 다 지어진 바탄 핵발전소의 가동을 중단시켰다. 필리핀 국민들에게 바탄 핵발전소는 곧 독재였고, 반핵은 민주주의였다.
바로 이 해에 창당한 대만의 신생 민진당은 당 헌장에 반핵 조항을 담았고 오랜 국민당 지배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규합해 ‘반핵은 반독재’라는 정치적 정체성을 만들었다. 2000년 3월 민진당의 천수이볜이 총통에 당선되면서 준공을 앞둔 제4핵발전소의 공사 전면 중단을 선언하면서 탈핵대만의 궤도가 시작되었다.
동아시아와 남아시아 그리고 튀르키예에 이르기까지 권위주의 정부가 추진하는 핵발전에 맞서 전개된 치열한 아시아의 반핵운동은 민주화 운동의 중심 동력이 되었고 민주화와 함께 일부 결실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인도와 튀르키예 등 적지 않은 정부들이 집회와 시위의 일반적 권리까지 가로막으면서 반핵운동을 더욱더 심하게 탄압하고 있다. 페르디난도 마르코스의 아들인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현 대통령은 바탄 핵발전소의 재가동과 소형모듈원자로(SMR) 설치를 공언한다.
탈핵운동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세계적 산업과 정치 조건의 변화다. 과거의 권위주의 정부가 득세했던 많은 나라에서 이제 신자유주의, 시장 독재, 포퓰리즘 정부가 들어서고 있다. 성장과 경쟁에 대한 압박이 에너지전환의 필요성과 가능한 방법에 대한 제도정치 내부의 논의를 가로막고, 핵산업계의 선전과 공세가 시민 사이의 차분한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위축된 핵산업 시장을 어떻게든 되살리려는 기업들은 아시아 공략에 더욱 열심히 나서고 있다.
대만은 핵발전을 종료했지만 앞으로도 야당의 정치 공세 속에서 한동안 정쟁이 계속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핵발전소의 상황을 진지하게 취재하고 보도하는 언론인이 눈총을 받고, 시민들은 오염수 방류와 후쿠시마 부흥 선전이 갖는 문제점에 대해 집단적 침묵을 강요당하는 분위기다. 한국의 거대 정당들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을 위해 핵발전을 더 확대해야 한다는, 선출되거나 표결되지 않은 동의의 카르텔을 유지한다. 탈핵 전환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전환의 비용을 나누는 적극적인 노력에 나서는 정치인은 멸종 상태다.
그러나 그럴수록 희망은 민주주의에 있다. 방사능과 핵폐기물이라는 골치 아픈 문제뿐 아니라 다가온 기후 위기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형식적 대의 민주주의의 의제와 작동 방식으로는 제대로 대처하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의 민주주의가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지금 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갈 존재들을 잇고 배려하고 대화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방식 만드는 과정에서 탈핵도 새로운 역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