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개관한 민주화운동기념관에 다녀왔다. 무거운 마음으로 전시관을 나왔을 때 옛 남영동 대공분실 앞에서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민주화 운동가들을 고문하던 공간, 취조를 위해 설계된 건물을 배경으로.
13년 전 어느 볕 좋은 날, 가까이 지내던 대학 선배와 남영동 대공분실까지 걸어간 적이 있다. 당시 우리는 사회 토론 동아리에 속해 있었고 그 주에 논의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현장을 확인하고 싶었다.
선배는 그곳을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으며 5층 고문실의 창문은 바깥에서는 안을 볼 수 없고 안에서는 밖으로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작게 만들어졌다고 했다. 5층으로만 통하는 나선형 계단은 눈이 가려진 채 끌려가는 이들이 방향 감각을 잃고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고도 설명했다. 정확한 층수를 알지 못하게 해서 이후에 증언하기 어렵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으리라 추측했다. 조사실 벽면에는 목제 타공판을 사용해 옆방의 비명을 고스란히 듣게 했다고 한다. 선배의 설명을 들으며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데 참담함을 느꼈다.
우리는 조사실을 그대로 보존해둔 5층 복도로 들어섰다. 물고문에 쓰인 커다란 욕조가 좁은 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변기와 침대가 문으로 구분되지도 않은 채 덩그러니 놓여 있는 생경한 구조에 메스꺼움을 느꼈다. 실제로 고문받았던 이들은 대소변 역시 수사관들 앞에서 해결해야 했다고 진술했다. 고문실 한가운데 놓인 박종철 열사의 영정을 응시하며 머리로는 아픈 역사를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밀려드는 폐소 공포에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짐작하는 것과 직면하는 것의 차이를 절감했다.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기억해야 할 일을 되새기겠다는 명분까지 다 잊어버렸다. 숙연해져 돌아오는 길에 “알면 알수록, 사색하면 할수록 우울하고 힘들어져.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런 고통을 자처해야 하지?”라고 선배에게 물었다. 스무 살이 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고민이었던가. 모르겠다. 당시에는 절박한 물음이었다. 선배는 어떤 효과나 보상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해서 하는 거라고 했다. “사색은 의무야.”
성해나의 소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고문실을 설계하도록 요청받은 건축가들의 작업 과정을 그린 소설로, 제목에 드러나듯 남영동 대공분실을 모티브로 삼고 있다. 합리성을 중시하는 건축학도 ‘구보승’은 스승 ‘여재화’가 작업한 취조실의 도면에서 창문을 지운다. 빛이 들면 희망이 생겨 신념이 굳건해질 수 있으므로 공간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꿔 설계도에 다시 폭이 좁은 창을 낸다. 인간이란 희망이 완전히 소거된 때보다 그것이 멀리에 미미하게나마 존재할 때 더욱 절망하게 되리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구보승은 건축가로서 주어진 일을 착실히 하면서 고문받게 될 인간에 대해 상상하고 숙고한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간”이라는 스승의 말을 기이한 방향으로 왜곡해 따른다. 그는 맡은 일을 잘 해내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지만, 무엇을 위한 열심인지는 점검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공포감을 주는 고문실을 설계할 수 있을지에 골몰할 뿐, 실제로 고통당할 이들의 삶이 얼마나 망가질지, 인간의 존엄을 빼앗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게 만드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가 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향하는 곳은 외면한 채, 당장 주어진 목표에만 근시안적으로 몰두하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가 가닿을 끝의 끝까지 남김없이 사유해야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을 괴롭게 하는 이들 또한 사색한다면, 인간을 지키려는 자들은 더 치열하게, 보다 끈질기게 사색해야만 한다.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한려수도 경남 사천 앞바다에 돌문어 낚시의 짜릿한 손맛을 보려고 전국에서 찾아온 강태공들로 북적거린다.
10일 사천시에 따르면 지난 9일 문어 금어기가 해제되면서 삼천포대교 인근 바다에 낚시꾼 2800여명을 태운 어선 650척이 출어했다. 이튿날인 10일에도 낚시꾼 2014명을 태운 어선 565척이 출어했다.
올해 경남·전남 해역의 문어 금어기는 5월24일부터 7월8일까지다.
사천 삼천포 돌문어는 주로 6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제철이다. 색이 유난히 붉고 맛이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삼천포대교 인근 바다에서는 유속이 느려지고 밀물과 썰물이 교차할 무렵 본격적 돌문어 낚시가 시작된다.
사천시는 지역 식당과 주유소, 숙박업소 등이 돌문어 낚시 특수를 누릴 것으로 기대한다. 사천바다케이블카와 아라마루 아쿠아리움, 용궁수산시장 등 사천의 대표 볼거리·먹거리 명소도 붐빌 것으로 예상한다.
박동식 시장은 “삼천포 돌문어는 지역 어업인들의 큰 소득원일 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의 주요 부가가치”라며 “안전한 조업 환경 조성, 건전한 어업 질서 확립을 위해 어업인과 현장 소통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별검사팀(채 상병 특검팀)이 항명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사진)의 형사재판 항소를 9일 취하했다. 이로써 항소심 재판 절차가 종료됐고, 박 대령은 1심에서 받은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이명현 특검은 이날 서울 서초구 서초한샘빌딩 특검팀 사무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박 대령 항명 혐의 재판의 항소를 취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브리핑 뒤 법원에 항소취하서를 제출했다.
앞서 특검팀은 국방부 검찰단으로부터 박 대령의 항소심을 이첩받았다. ‘채 해병 특검법’은 채 상병 사망사건과 그 수사에 대한 외압 의혹뿐 아니라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도 특검 수사 대상으로 명시했다.
또한 수사 대상인 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 특검이 이 사건을 이첩받아 공소 취소 여부 결정을 포함한 공소유지 업무를 할 수 있게 돼 있다.
이 특검은 “박 대령이 수사단장으로서 채 상병 순직사건의 초동조사를 하고, 해당 기록을 경찰에 이첩한 것은 법령에 따른 적법행위”라며 “국방부 검찰단이 박 대령을 항명수괴 혐의로 입건해 공소제기를 한 것은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 특검은 이어 “1심 재판은 박 대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며 “이런 상황에 박 대령 항명 혐의 재판에서 공소를 유지하는 것은 특검으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라 판단했다”고 했다. 이 특검은 “향후 수사를 보면 항소취하 결정이 타당하다는 것을 누구든 이견 없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박 대령은 2023년 8월 채 상병 순직사건 초동수사기록의 이첩을 보류하라는 국방부와 해병대 상부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경찰로 이첩해 항명 혐의로 기소됐다. 박 대령은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진행된 1심 재판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고, 국방부 검찰단의 항소로 서울고법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해병대에 기록 이첩 보류를 지시했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측은 “특검은 박정훈 대령의 공판사건을 군검찰로부터 이첩받을 권한도, 항소를 취하할 권한도 없다”며 “위법적이고 월권적 행위”라고 주장하는 입장문을 냈다.
이에 대해 정민영 특검보는 “충분히 법리적 검토를 했고, 특검법상 공소유지 권한 안에 항소를 취하하는 권한도 포함돼 있다고 판단했다”며 “법령에 따른 권한 행사”라고 반박했다.
박 대령을 지원해온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성명에서 “마침내 박 대령의 항명죄 재판이 무죄 확정판결로 종결됐다”며 “대한민국 공직사회에서 진실과 양심을 지켜내고 정의를 회복한 날로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대령 원보직 복직을 시작으로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은 물론, 권력의 횡포에 맞서 진실과 양심을 지켜낸 이들에 대한 합당한 대우와 명예회복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